자화상

-이청준의 '눈길'을 읽고

by 조승희

무더위가 한 풀 꺾인 8월 말의 어느 날, 우리는 전라도 장흥으로 달려갔습니다. 자연휴양림의 빈자리라면 어디든 괜찮았을 준비 없던 즉흥 여행이었습니다. 장흥이 이청준을 비롯한 유명 문학가들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장흥의 대표 관광지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남도의 끝 한 귀퉁이에 자리한 고장, 어디서 출발한들 쉽게 다다를 수 없을 물리적 거리감 때문일까 주말임에도 관광지 대부분은 기이하리만치 조용하고 한적했습니다. 무언가 알 듯 모를 듯 심리적 거리감을 간직한 이청준 문학의 이미지를 참 닮은 곳이었습니다.


제일 존경하던 소설가로 이청준 작가님을 꼽던 저는 2000년 이전에 나온 대다수의 작품들을 읽어보았던 애독자였습니다. 그러나 ‘지배와 해방,’ ‘흐르는 산’처럼 관념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들을 좋아하는 제게 「눈길」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자주 보지 않으면 잊힌다는 말을 증명하듯 마음에서 사라져 가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눈길’이 이청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은 국어 강사였던 제게 교과서 수록 작품인 ‘눈길’ 읽기는 한 해 한 해의 의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장흥 여행 후부터 머리에서 떠오른 낡은 빚 문서의 힘에 눌려 이청준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감행할 수밖에 없을 때 떠오른 작품이 ‘눈길’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청준은 그의 소설 「지배와 해방」에서 글은 “개인적인 삶의 욕망과 독자들의 삶을 위한 일반적인 가치질서의 실현”을 함께 추구해야만 하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글쓰기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길」은 이청준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눈길」은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그린 수작입니다. 궁금증으로 기대하게끔 만드는 서사의 힘, 호흡 조절하듯 감동을 천천히 고조시키는 묘사의 아름다움 등 이 작품을 빼어난 작품이라 칭찬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제가 이 작품을 높게 사는 이유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해명이자 가장 내밀한 타인. 이 1차 인간관계에 대한 정리 없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평범하며 동시에 특별한, 이중적인 어머니들을 현실에서든 작품에서든 많이 만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에 대한 애증을 주제로 한 글쓰기는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넘고 싶은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에서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내용을 다룬 제 첫 습작 소설도 분명 그랬습니다. 현실에서 패배한 나 자신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포장하여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눈길」이 여러 독자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가는 것은 자신을 위로하고 나아가 세상을 위로하며 ‘강요하지 않고도 타인을 지배하여 결국엔 해방으로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글쓰기의 본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글쓰기의 시작이 일기와 편지가 아니었을까마는 제 글쓰기의 시작도 그러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긍정하기 위한 일기 쓰기에서 가까운 지인을 지배하기 위한 편지 쓰기로, 소소한 글짓기 상은 엉뚱하게도 더 많은 타인을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독과 다작, 지배권 강화를 위한 자기 노력은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소설가란 직업밖에 존재하지 않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솜사탕 같은 구름에서 내려와 바닥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독은 오히려 모든 작가들의 천재성과 나를 비교하게끔 만들었고 다작을 위한 땀방울은 점점 말라갔습니다. 젊은이는 뛰어난 현실 감각을 발휘해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달 대신 6펜스를 선택합니다.


그 선택을 후회해 왔다고 생각해 왔는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작가라는 이름에 대한 번뇌를 조금씩 놓아가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청준의 글을 다시 읽으며 이번 기회에 ‘家’에 미련이 남지 않았나, 내 글쓰기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곰곰이 묻습니다. 그 이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나를 해방시키는 진정한 글쓰기에 다다를 듯합니다. 앞으로의 한 자 한 자는 흩어진 생각의 파편을 모아 오직 나만을 지배하는 그물로 엮고 싶습니다. ‘쓴 대로 이루어지리라’ 이 무서운 문구를 표지로 한 나의 자화상. 그리하여 나와 내 세상을 비추는 우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스로 깊어져 자연스럽게 흐르길 꿈꿉니다. 많은 빚 문서 중 하나를 덜어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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