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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16. 2022

호주 진저비어 Ginger Beer, 맥주 아니다


 도보로 5분 거리에 진저비어 팩토리가 있다.




브리즈번에 와서 지인과 음식점에 갔을 때 지인이 내게 물었다.

음료수 뭐 래요, 진저비어 마실래?

안 그래도 물설고 낯선 나라 낯선 언어의 무리 속에서 낯선 이름 들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비어 beer라곤 한 젓가락도 들이지 못하였으니 더욱 그랬다. 

그때 눈치 빠른 지인이 말을 덧붙였다.

진저비어는 맥주가 아니에요. 그냥 생강향이 든 음료수예요. 다들 처음에는 "비어 beer"가 든 이 이름에 당황해요.



난생 처음 마셔 본 진저비어 맛은 맥주가 든 것도 같고, 안 든 것도 같고, 맛이 톡 쏘는 것도 같고, 안 쏘는 것도 같, 어정쩡한 중간의 맛이었는데, 그렇다고 밍밍한 맛은 또 아니었으니 속으로  엄청 당스러웠었다.  선 장소에서 불현듯 만난,  잘 모르는 사람 같은데, 언니 언니 반가워, 할 때 는 느낌이 그럴까. 여하튼 그때 진저비어가 비어 beer는 아니라는 걸 희미하게 느끼게 됐다.



몇 년 후, 시드니에서 친구와 둘이 마신 진저비어는 비어가 아님을 확신했다. 드니 강을 따라 운행하는 리가 내려준 코카투 아일랜드에서 나는 또 그 진저비어와 맞닥 뜨리게 됐다. 

친구의 쿨백에서 꺼낸 진저비어는 수십 년 전 죄수들이 갇혀 살았다던 그 섬에서 내 몸속으로 칼칼하게 들어왔다.  

갈매기 떼가 뿌려놓은 하얗게 았던 그 누적된 들의 똥냄새 때문이었을까. 알을  죽은 갈매기들의 시체를 본 이유을까. 것도 아님 완강한 쇠창살 속 갑갑한 죄수들의 갇힘 내 몸속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내가 마셨던 건 이전의 것들보다 느낌이 달랐다. 엄청 시원하고 칼칼하고 달달하기까지 했다. , 애절거나 퍽퍽한 냄새거나 쓸쓸한 새들의 주검 앞에서 느껴지던 갑갑증을 진저비어가 끔히 씻어 주었다. 



그때부터 진저비어는 나의 패브릿 드링크가 되었다. 너무 톡 쏘지도 않고 밍밍하지도 않아 내 몸에 맞다.
사별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그때도 난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얼른, 냉장된 진저비어를 꺼내 마시면 갑갑증이
가셨다.





몇 년 전 이곳에 오니 그 진저비어 팩토리가 나의 집 옆에 있었다.



사는 곳이 평야지대이다 보니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동네다. 이 공장에선 생강뿐 아니라 파인애플, 복숭아, 망고, 구아버, 레몬, 패션푸룻 같은 과일을 수확해서 푹 고아 음료수를 만든다. 들어가면 시음을 해볼 수 있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6개들이 세트를 사놓고 야금야금 마신다.

3년 전에는 한국에서 지인이 코스트코에서 사 왔다며 내게 진저비어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주었다. 나의 시아주버님께서는 서울의 동네 슈퍼에서 진저비어를 만나면 반가워서 다 들고 오신다며, 이 공장에 가신  조이라는 직원과 여담을 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진저비어는 내 마음 힘들 때 쿨하게 식혀주던 고마운 벗이기도 하다.
나는 그 팩토리 앞을 지날 때마다 마치 향수 같은, 진한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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