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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ug 22. 2022

칼리 할머닌 호주 스타일 • 1

- 난 한국 스타일

1년 전쯤이었다.


대바늘로 트로마 테디를 뜨기 시작했다. 내 실로 떠서 적십자사에 갖다 주는 거였다. 문화센터에서 벨한테 배운 건데 집에 와서 혼자 하다 보니 곰인형 팔에서 코 줄임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옆집 칼리 할머니는 코 줄임을 선수처럼 1초 만에 끝내주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칼리가 코바늘 뜨개도 잘하리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난, 두 달 전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있다. 그녀는 내가 뜬 비니 모자의 무늬가 맘에 든다며 가르쳐달라고 했다. 주 수요일 오후에 가방을 들고 학생처럼 우리 집에 와서 열심히, 참으로 열심히 보고 뜨려고 노력을 한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칼리에게 코바늘 뜨개를 가르치면서 알았다.


그녀는 한 번에 손녀 둘의 모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 두 달이 지나도록 내가 가르치는 무늬를 못 뜬다. 고무 뜨기도 그렇고 다이아몬드 뜨개도, 안다고 해놓고선, 코바늘만 들면 미로만 헤매신다.  할 수없이 내가 두 개를 첨부터 끝까지 떠다 드렸다. 그녀의 털실이 굵어 뜨는데 내 오른 팔이 무척 아팠다.



몇 주 전부터는 친구 아들을 준다며 또다시 도전했는데 여전히 안되고 있다. 코바늘이 너무 크다해서 내 작은 바늘로 바꿔다 주고, 배우는 기술이 인지가 안되니 갑갑하고 풀이 죽은 것 같아 어제는 따끈한 밥과 카레를 건네드리고 왔다.


밥을 건네주면서 뜨개질 잘 되냐고 내가 슬쩍 물어보았다.

아직 잘 모르겠다며 머리를 애매모호하게 흔들었다. 애매모호하게 아직도 헤매시는 것 같다.

나는 안되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신다고 하셨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꼬아 들어 보이면서 행운을 빈다는 표시를 해주면서 생긋 웃는 이 천진난만한 할머니, 귀엽다. 이번 주엔 목요일 오후 두 시에 오기로 했다.


이번엔 또 촌지로 무슨 먹거리를 들고 오시려나. 내게 미안한지 고마운지, 지난주엔 소시지 롤을 190도 온도의 오븐에 20분 동안 굽고, 손수 키운 빨간 고추를 따서 칠리 잼을 손수 만들어 병에 고이 담아오셨던데.


칼리가 만들어 온 먹거리.소세지롤은 칼리랑 둘이 커피랑 먹고 남긴 거다.


칼리는 칠리 잼이 담긴 병에 Hot, 이라고 크게 이름표를 붙여서 갖고 오셨다. 남편 릭 할아버지가 라벨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여기 백인들 매운 음식 잘 못 먹는데 이 부부는 엄청 매운 것도 잘 드신다. 음식 코드도 우리 가족이랑 잘 맞는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내 몸은 이분들에게서 이분들만이 지닌 정서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시나브로 습득한다. 칼리 할머니께서도 분명, 뜨개질 말고 내게 얻어가는 게 있을 게다. 그게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행복감이면 좋겠다.


뜨개질을 매개로 살빛 다른 사람끼리, 연령도 다른 사람끼리, 마주 보고, 웃고, 농담하고, 매주 한 번씩 커피를 마신다. 바로 옆집인데도 약속 없는 날엔 예고 없이 방문하지 않는다. 서로 무언의 약속처럼 우린 그걸 지킨다.


모자 뜨개질도 습득이 안 되는 칼리는 말한다. 홍, 나중에는 너의 이불 뜨개도 배울 거야, 하고.

아이고, 칼리 할머니는 호주 스타일이다. 난 한국 스타일이다. 서로 만남이 잦으면서 음식도 나눠먹고 생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것이 교류되고  합성이 되어 간다. 어떤 땐 격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푹~ 정이 들기를 바라본다.


칼리 할머니가 배우려하는데 잘 안되는 모자의 무늬. 할머닌 왜, 이게 잘 안되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솔직 재치 할머니가 편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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