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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06. 2022

자기 말을 알밤인 양 툭 털어놓는 호주 사람들

- 흉보며 닮아간다



지금 남편은 내가 두 번째 결혼한 사람이야.


작년 3월 태즈 마니아에서 이사와 5월부터 이곳 리지 영어교실 선생으로 부임한 녀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난 속으로 좀 우뚱했다. 방금 그녀가 익은 밤송이처럼 툭 떨어뜨린  문장 하나 턱 걸렸다.

 나라면 처음 만나는 자신의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밤송이에서 알밤이 익으면 어쩔 수 없이 톡 떨어지듯, 그녀는 그렇게 자기 말을 교실 안에 떨어뜨렸다. 교실 안 공기는 아무 일 없는 듯 다음 스텝으로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 우리를 가르치는 데 특별한 스킬이나 실력은 없었다. 대신 매사에 담담했다. 가령 학생 하나가 다른 학생에게 장난으로라도 '배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그건, 배신은 아니지, 라며 편을  마음을 풀어준다. 다른 학생들의 사생활을 파고드는 일도 한계선을 분명히 그어다. 반의 약자를  보호하는 데 지극히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가볍고 밝았다.








나의 스텝 도터한테 생일선물로 줄
이불이야.


 어느 날 옆자리에서 묵묵히 뜨개질하는 짝꿍한테 무엇을 뜨냐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었다. 이번에도 그녀 2의 입에서, 내겐 생소한 알밤 한 톨이 톡 떨어졌다. 밤이 나의 머리를 콩 쥐어박는 기분이었다. 나라면 굳이 의 집안 내막을 모르는 옆사람에게 신이 '붓엄마'는 사실을 알밤 떨어트리듯 그렇게 떨어뜨리진 않을 것이었다.



그녀 2 떨어뜨린 그 알밤을 매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녀 스텝 도터  step daughter 생일은 나와 같은 날이고,  그녀 2의 생일은 나의 딸하고 같은 날이었다.

불현듯 우린 친한 사람처럼 서로의 날에 받은 선물과, 함께 식사 서로의 레스토랑에 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련되거나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덧칠하는 것보다, 알밤 맛처럼 담백하고 고소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 2가 떨어트린 알밤을 까먹는 우리 두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다.




이처럼, 이곳 사람들은 자기표현이 구체적이고 정확한 게 습관화되어있다.


가령, 자기 손주 나이를 말할 때도 다음 주 15일 날이면 5세가 됨을 개월 수는 물론, 일 수까지 정확히 따져서 이야기한다.

보이 프렌드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을 땐, '허즈 번드'라 부르지 않는다. 반드시 '파트너'라 부른다. 이처럼 정확은 정직과도 친한 관계다.



처음엔 그들의 이런 문화가 생소했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이들의 습관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극히 인적인 사생활  앞에다 툭 털어놓고 있었다.


시나브로 이곳 문화에
 적응되어간다.

흉보며 닮는다더니,
그렇게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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