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진저비어 Ginger Beer, 맥주 아니다
도보로 5분 거리에 진저비어 팩토리가 있다.
브리즈번에 와서 지인과 음식점에 갔을 때 지인이 내게 물었다.
음료수 뭐 할래요, 진저비어 마실래요?
안 그래도 물설고 낯선 나라 낯선 언어의 무리 속에서 낯선 이름을 들으니 정신이 더 혼미해졌었다. 비어 beer라곤 한 젓가락도 들이지 못하였으니 더욱 그랬다.
그때 눈치 빠른 지인이 말을 덧붙였다.
진저비어는 맥주가 아니에요. 그냥 생강향이 든 음료수예요. 다들 처음에는 "비어 beer"가 든 이 이름에 당황들 해요.
난생 처음 마셔 본 진저비어 맛은 맥주가 든 것도 같고, 안 든 것도 같고, 맛이 톡 쏘는 것도 같고, 안 쏘는 것도 같은, 어정쩡한 중간의 맛이었는데, 그렇다고 밍밍한 맛은 또 아니었으니 속으로 난 엄청 당황스러웠었다. 낯선 장소에서 불현듯 만난, 내가 잘 모르는 사람 같은데, 언니 언니 반가워, 할 때 닿는 느낌이 그럴까. 여하튼 그때 난 진저비어가 비어 beer는 아니라는 걸 희미하게 느끼게 됐다.
몇 년 후, 시드니에서 친구와 둘이 마신 진저비어는 비어가 아님을 확신했다. 시드니 강을 따라 운행하는 페리가 내려준 코카투 아일랜드에서 나는 또 그 진저비어와 맞닥 뜨리게 됐다.
친구의 쿨백에서 꺼낸 진저비어는 수십 년 전 죄수들이 갇혀 살았다던 그 섬에서 내 몸속으로 칼칼하게 들어왔다.
갈매기 떼가 뿌려놓은 하얗게 쌓인 먼지 같았던 그 누적된 새들의 똥냄새 때문이었을까. 알을 품다 죽은 갈매기들의 시체를 본 이유였을까. 것도 아님 완강한 쇠창살 속 갑갑한 죄수들의 갇힘이 내 몸속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날 내가 마셨던 건 이전의 것들보다 느낌이 달랐다. 엄청 시원하고 칼칼하고 달달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날, 애절하거나 퍽퍽한 냄새거나 쓸쓸한 새들의 주검 앞에서 느껴지던 갑갑증을 진저비어가 말끔히 씻어 주었다.
그때부터 진저비어는 나의 패브릿 드링크가 되었다. 너무 톡 쏘지도 않고 밍밍하지도 않아 내 몸에 맞다.
사별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그때도 난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얼른, 냉장된 진저비어를 꺼내 마시면 갑갑증이
가셨다.
몇 년 전 이곳에 오니 그 진저비어 팩토리가 나의 집 옆에 있었다.
사는 곳이 평야지대이다 보니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동네다. 이 공장에선 생강뿐 아니라 파인애플, 복숭아, 망고, 구아버, 레몬, 패션푸룻 같은 과일을 수확해서 푹 고아 음료수를 만든다. 공장에 들어가면 시음을 해볼 수 있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난 6개들이 세트를 사놓고 야금야금 마신다.
3년 전에는 한국에서 지인이 코스트코에서 사 왔다며 내게 진저비어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주었다. 나의 시아주버님께서는 서울의 동네 슈퍼에서 진저비어를 만나면 반가워서 다 들고 오신다며, 이 공장에 가신 날 조이라는 직원과 여담을 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진저비어는 내 마음 힘들 때 쿨하게 식혀주던 고마운 벗이기도 하다.
나는 그 팩토리 앞을 지날 때마다 마치 향수 같은, 진한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