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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Sep 08. 2020

여행의 시작

환갑맞이 가족여행

가족의 탄생



작은 외삼촌과 아버지는 이십대가 넘어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작은 외삼촌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까까머리 공익근무요원이었다. 한 살 차이(외삼촌이 한 살 더 많음) 이십대 젊은이들은 금세 친해졌고,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그때, 외할머니가 낳은 열 두번째 아이, 작은 외삼촌의 동생인 어머니를 만났고, 아마도?(아버지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반했었나보다. 아버지가 살던 곳과 어머니가 살던 곳의 중간, 장평 다방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그 당시 같이 살던 작은 할아버지가(나에게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버지인데, 두 분은 두 살 차이 밖에 안 난다.)너무 늦게 우체국에서 붙이는 바람에, 어머니가 편지를 받은 날이 바로 만나자고 한 그날이었단다. 어머니는 "내가 안 나가려고 그런게 아니라, 그날 편지가 왔는데 뭘 나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 옛날에도 어머니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다고.


다방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던 아버지는,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고, 초겨울에 얄브레한 홑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외할머니집으로 쫓아왔더란다. 왜 안 나왔냐고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어머니가 어떻게 답했을지는 지금도 눈에 훤한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툭툭 답했겠지. 그런데 어쩌다가 약혼을 하고, 내가 어머니 뱃 속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로는 중매쟁이를 보내왔더란다. 그래서 어찌저찌 혼담이 오고 가서 약혼을 했다는. 3월에 결혼식을 하고 7월에 내가 태어났다. 그래서 나이가 부모님의 결혼생활 햇수다. 이제 거의 사십년이 되어간다. 세상에, 사십년이라니! 사람과 그렇게 오래 살다니!


3년 뒤 여동생이, 곧이어 남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 맏이로 친가, 외가 양쪽으로 무척 예쁨을 받았다고 한다. 친가쪽은 집안에 첫 아기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쭐쭐 빨았'고, 외가쪽은 막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예쁘기는 마찬가지. 어렸을 때는 무척 천방지축으로 두려운 것 없이 온동네를 쏘다녔다.(고 한다. 사실 7살, 8살 때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하는 말을 들으보면 참 겁 없던 꼬맹이였다.) 좁은 산골 마을에 살았는데,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불쑥 손을 내밀고 "백원만 주세요." 했단다. 모르는 사람인데 백원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백원을 받아들고 구멍가게에서 새우깡, 초코파이, 요구르트 따위를 사먹곤 했다. 뱃골이 컸던 나는 요구르트도 한 줄을 사서 한 번에 먹었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족과 여기 저기 많이 놀러다녔다. 아버지 직장 친구분들, 가족들과 바다, 계곡, 벚꽃놀이를 해마다 빠지지 않고 다녔고, 자연농원(에버랜드)도 꼬박 놀러 갔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새 가족 여행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내가 대학생,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같이 갈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팔순 때 친가 식구들이 다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간 것이 내가 '어른'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가 되어서 떠난 첫 가족여행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버지도 개띠, 나도 개띠. 

아버지 나이 스물 넷에 내가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참 어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물론 부모님 세대에, 그 나이에 부모가 된다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애 셋 키우기 힘들지 않았어?" 물으니 힘들었다고, 밥 먹이고, 씻겨서 재워놓고, 밀린 빨래를 (막내 동생 기저귀 빨래. 그때는 천 기저귀를 썼으니까.) 새벽 한 시까지 손빨래를 했단다. 와, 나는 절대 못할 것 같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어머니는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할 새도 없었다고, 자식 새끼 셋을 키우는 거만 생각했다고.' 하신다. 


2012년에 문득, '아버지 환갑이 6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6년 만기 적금을 들어 2018년에 부모님을 여행보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6년 동안 틈틈이, 어디로 여행가고 싶냐고 물어보고,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여행의 시작


드디어 2018년.

처음에는 발리를 생각했다. 두 분이 풀빌라에서 오붓하게 보내시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두 분만 보내기에는 불안했다. 그 불안함에 어머니가 쐐기를 박았다.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 자유여행을 하는데 "나도 이제 너네처럼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해서 패키지로 여행을 다니셨는데, 어머니는 이제 새벽같이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패키지가 싫다고, 너희처럼 느긋하게 일어나서 자동차 타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그럼 자유여행하자!

딸내미가 그렇게 많은 곳을, 혼자서 돌아다녔는데 걱정할 거 없어!

나만 따라와!


그래서 다섯식구 모두

환갑맞이, 유럽 가족 여행을 떠났더라는, 

그런 이야기.


막내가 오랜 병으로 심장이 안 좋아져서 

2017년부터 일년 동안 심장약을 먹으며 심장 상태를 지켜보느라, 내 심장이 쫄깃해졌지만

다행히 병원에서 '비행기를 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2018년 7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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