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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13. 2020

행복 에너지

환갑맞이 가족여행

"특별한 사람이네요. 신에게 축복을 받은 사람이에요."


혼자 여기 저기 여행 하면서 제일 부러웠던 건, 딸과 엄마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었다. '여긴 엄마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나도 엄마랑 사진 찍고 싶다.'  좀 더 빨리 어머니와 여행을 떠나지 못한 까닭은 막내 때문이다. 막내가 '엄마 껌딱지'인데다가 어머니도 불안해서 막내를 떼어놓고는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많은 순간, 아쉬움을 삼켰다. 드디어,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출발이다.

부모님 두 분은 고가의 풀패키지 여행만 하셨던 분이라서 비행기 환승도 처음, 호텔이 아닌 숙소에서 주무시는 것도 처음이다. 두바이에서 환승 대기 시간이 4시간이 넘는데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막내가 열 시간 넘게 한 비행기 안에 타고 있으면 지루할 것 같았다. 부모님과 막내는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10만원 정도씩 웃돈을 더 내고 비상구 자리를 잡았다. 나랑 동생은 바로 그 뒤에 앉았다. 두바이까지 9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막내는 단 한숨도 자지 않았다. 엄마와 누나들이 발열 안대도 해주고, 지금 자야 내일부터 여행할 수 있다며 겁을 주기도 했지만, 동생은 아기 때 마냥 눈만 반질반질할 뿐......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내릴 때, 우리 자매 옆, 창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건넨 말이 바로 첫 문장이다.


"네?"

순간, 비꼬는 말인가 싶었다.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진심이었다. 

"당신이 보기에도 제 동생이 달라보이나요?"

"네. 가족 중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삶이 무척 특별해지죠. 저도 발달이 느린 사촌동생이 있어서 잘 알아요."

"아아."

"가족여행을 가는 거죠? 정말 행복해보여요."

눈물이 핑 돌았다.

"네. 아버지가 올해 환갑이신데-환갑은 한국에서 중요한 나이다, 라고 설명을 하고- 온 가족이 여행을 하기로 했어요."

"좋은 여행을 하길 바라요. 다음에 오만에 올 기회가 있으면 저한테 꼭 연락하세요."

비행 내내 조용하던 아저씨가 도착할 즈음에 한 말은 여행 내내 내 마음에 남았다.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는 살구, 꽃능금 같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많았다.

잘 익은, 살구빛, 이라고 밖에 말할 길이 없는 열매가 나무 밑으로 떨어지면, 흙을 툭툭 털고 반으로 쪼개 날름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적당히 새콤하고 달콤한 살구맛. 씨앗은 잘 말려 속씨앗을 갈아 엄마가 세수할 때 썼다. 꽃능금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똑똑 따서 귀걸이라며 귀에 대어보기도 했다. 봄에는, 이른 봄에는 튤립이 피었다. 시골에서 튤립 구근을 어떻게 구하셨던걸까. 마당 한 켠에 빨간색, 노란색으로 피어나던 튤립. 어린 내 눈에도 무척 예뻐서 튤립이 피어나면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엉엉 울었다고, 튤립이 예쁘게 피어난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고, 막내의 1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와서 그렇게 울었다고 내게 말한 건, 그 날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렀을 때였다. 딸, 딸, 아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가족 구성이 아닐까. 큰 딸, 작은 딸, 막내로 아들. 막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모두 무척 기뻐하셨다. 달수를 다 채우고 이 세상에 나왔지만, 채 2kg이 못 되었을 것 같았던 막내. 무척 조그마하게 태어났지만 '눈이 밴질밴질' 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이상함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약하게 태어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비실비실했다. 말도 늦었다.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 것 같아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학원에도 다녔단다. 여덟살에 남들처럼 학교에 입학했지만 막내는 일반학교에는 다닐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알지 못했던, 인정할 수 없었던 사실. 발달장애. 특수학교 입학 대상자. '이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란 말을 듣고 숨죽여 울었던 엄마는 그러나, 막내를 데리고 원주에 있는 특수학교로 날마다 통학을 하셨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버스를 타고 원주의 특수학교에 막내를 데려다주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1년. 태어나 자란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세우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묵묵함에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내가 13살, 막내가 9살에 원주로 이사를 나왔다. 


막내는 원체 몸이 약했다. 열한살 무렵,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나중에 소아당뇨라고 진단을 받았다. 췌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제1형 당뇨. 어머니는 식단관리를 철저히 하며 동생을 보살폈지만, 워낙 오래 당뇨를 앓다보니 서서히 합병증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심장 기능이 떨어져서 심장 약을 일년 동안 먹었다. 6년 동안 차곡차곡 적금으로 모아 온 돈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려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이 된 건 부모님이 아닌 막내였다. 기능이 떨어진 심장이 걱정이었다. 막내만 떼어놓고 여행을 다녀올 수도 없는 일. 일년 동안 심장약을 먹으며 기능을 끌어올렸다. 다들 막내가 걱정이었지만 정작 그 녀석은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 제일 들떴다. 


비행기 환승 대기 시간에도,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취리히에서 루체른으로 넘어오는 기차에서도 절대 자지 않았던 막내는, 루체른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 밖에 걸리지 않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우리는 그런 막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숨죽여 킥킥 웃었다. 그렇게,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꿈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이 스위스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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