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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15. 2020

Happiness in the air

환갑맞이 가족여행

2011년 리기산.

혼자 다녀온 첫 해외여행은 스페인이었다. 일정을 고르면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해주는 '호텔팩'으로 보름 남짓 돌아다녔다. 좌충우돌, 혼자 한 여행은 내게 엄청난 자신감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점에서 이탈리아 가이드북을 샀다. 2011년 이탈리아-스위스 여행은 항공권을 사는 것부터 모든 일정과 예약을 내가 했다. 20일이 조금 넘는 일정이었다. 보름 넘게 이탈리아를 돌아다니고 기대했던 스위스로 넘어왔는데......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 내 얼굴도 흐렸다. '알프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름답다는데, 날이 너무 흐렸다. '리기반(RIGIBAHN)'을 타고 리기산 정상에 올라가니 아예 비가 내린다. 아름다웠지만, 파란하늘과 초록들판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2018년 리기산.

발걸음도 가볍게, 미리 맞춰 온 가족 반팔을 입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 유람선을 타러 가는 가족들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5분 남짓 걸어서 선착장에 도착. 8시 12분 배를 타고 우선 비츠나우(Vitznau)로 떠났다. 


여행 첫 날.

햇살은 따뜻했고 하늘은 맑았다.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로 가는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보며 가족들 사진을 찍었다.  비츠나우에서 리기반으로 갈아타고 리기클룸으로 올라갔다. 날이 좋으니 경치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키가 높은 나무를 지나 창문으로 풍경이 보이면, 기차 안에 나지막하게 탄성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내 마음은 행복으로 부풀어 올랐다. 2011년 흐렸던 리기산을 떠올리니 이 날 날씨가 정말 감사했다. 


기차에서 내려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경치. 발 밑으로는 푸른 초원과 파란 호수가 보이고, 눈높이에는 저 멀리 만년설을 이고 우뚝 솟은 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머리 위로는 이리 저리 비행운이 가득한 새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가득하다. 푸른 초원에서 우리는, 점프샷을 찍었다. 가족 반팔 앞에는 '우리는 가족입니다.', 뒤에는 '엄마', '아빠', '큰딸', '작은딸', '막내'라고 적었다. '뭘 이런 걸 하냐.'고 투덜대던 아버지는 펄쩍펄쩍 열심히 뛰어주셨다. 쉼터에서 시원한 밀맥주로 짠, 건배를 하며 아버지는 '고생했다.'고 하셨다. '고생은 무슨. 행복이지.' 라고 말하며 웃었다. 


언제나 혼자 보던 아름다운 풍경을, 가족들과 함께 보는 내내, 행복했다. 내 마음이, 가슴이 풍선인 것 마냥, 행복으로 빵빵하게 부풀어올랐다. 행복으로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그날 리기산 공기 속에는 '행복'이라는 특별한 물질이 가득했을지도.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Weggis)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의 다 가족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놀랐다. 가족과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혼자 아쉬움을 삼켰겠지.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되고 긴 다리가 루체른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카펠교다. 랜드마크란 참 대단하다. 루체른, 하면 카펠교니까. 혼자 여행 다닐 때는 피사체가 건물이나 풍경인데, 가족과 함께 왔으니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찍은, 카펠교 난간에 팔을 올리고 카메라를 보며 웃는 가족 사진을 좋아한다. 

부모님은 풀패키지 여행만 하셨기에, 이렇게 많이 걷는 여행은 익숙하지 않다. 리기산에서 그리 많이 걷지 않은 것 같았지만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호숫가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어갔다. 이날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서 아이스커피 생각이 간절하긴 했다. 2011년과 2018년, 7년 사이에 스위스 여름 기온이 무척 오른 듯 했다. 11년에는 반팔 위에 바람막이를 입고 다닐 정도로 살짝 쌀쌀한 날씨였는데, 18년에는 낮기온이 한국못지 않게 덥고 습했다. 잠시 쉬고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와 일찌감치 저녁을 해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인터라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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