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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19. 2020

UP&UP

환갑맞이 가족여행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막내는 차근차근, 한글도 배우고, 수도 헤아렸다. 한글을 익히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몇 번이고, ㄱ, ㄴ, ㄷ을 써 내려갔던 막내의 깍두기 공책이 떠오른다. 어설프게 연필을 쥐었던 조그마한 손도. 공부가 어려워서, 하기 싫어서 짜증 내고, 울고, 성질 부리고, 자기 머리를 때리던 모습도 생생하다. 숙제를 다 하고 나면 몇 시간이고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장난감 자동차, 기차같은 탈 것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했다. 주로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 쥐고 눈 앞에서 위잉, 하고 지나가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막내의 눈 앞에서 하루에 수 백번은 위잉, 소리를 내며 지나갔을 자동차들.


그런 애정을 알기에, 두바이에서 환승할 때 우리가 타고 왔던 A380비행기 모형을 사주었다. 여행 내내, 몇 번이고 손에 쥐고 들여다보던 막내. 역에서 코 앞이었던 루체른 숙소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으로 들고 나는 기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다. 여행을 하고 나니, 아름다운 풍경이나 유적지보다, 가족들의 어떤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막내는 창문 앞에 앉아있던 뒷모습. 좋아하는 탈 것을 아침부터 실컷 보던 막내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루체른으로.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구간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우리 가족은 모두 자연 덕후인데, 부모님은 스위스의 자연을 무척좋아하셨다. 높은 산과 호수 사이를 누비며 달려가는 기차. 굽이 굽이 돌아가면 새롭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경. 탈 것을 좋아하는 막내는, 기차를 탄 것만으로 행복했다.


인터라켄 숙소는 OST, 동역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았다. 인터라켄이 그리 크진 않지만, 부모님과 막내를 위해 캐리어를 끌고 먼 숙소까지 걸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에어비앤비로 집 한층을 다 빌렸다. 윗층에는 주인이 살고 아래층에는 주인이 하는 가게가 있는 숙소. 조금 낡았지만 아버지가 "여기서 살고 싶다." 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셨다. 


조금 이른 체크인을 해서 가방만 놓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나섰다. 7년전, 이곳에서 처음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고 정말 재미있었다.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꼭 해보면 좋겠다. 패러글라이딩 업체를 찾아 걸어가는데, 어? 7년 전에 내가 했던 업체를 바로 찾아냈다. 들어가서 패러글라이딩 하려고 한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 그래?, 어어어, 하다가 동생과 아버지는 밴을 타고 떠났다. 어머니와, 나 , 막내는 패러글라이딩 착륙 장소인 회에 공원 앞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둘을 기다렸다. 회에 광장 너머로는 융프라우가 보인다. 만년설이 하얗게 쌓인 아름다운 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드디어 아버지가 내려오셨다. 함박웃음을 짓고 신이 나서 "한 번 더 하고 싶다." 하신다. 이어서 동생도 내려오고 이른 점심을 먹은 뒤, 하더 클룸(Harder Kulm)에 올라갔다. 스위스패스 소지자는 반값에 푸니쿨라르 티켓을 살 수 있다. (2018년 기준) 만약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는다면, 하더클룸에 올라오면 된다. Interlaken 이란 말 뜻이 두 호수 사이라는,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땅이라서 하더클룸에 올라가면 두 호수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스위스도 낮동안에는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계속됬지만, 하더클룸에 올라가니 제법 시원했다. 내가 알던 스위스 여름 날씨.  다시 내려와 브리엔츠 호수로 유람선을 타고 갔다가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닭을 사서 무척 맛있는 닭복음탕을 만들어 먹고 이 날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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