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랑 Oct 19. 2020

James and Sherlock

환갑맞이 가족여행

혼자 하는 여행은 느긋하게 아홉시 넘어서 일어나곤 했는데,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여덟시 조금 넘어서 움직이곤 했다. 밤 열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아침에 눈이 번쩍 번쩍 떠졌다. 어머니는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준비하셨고, 그 사이에 나는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가족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설거지와 뒷정리는 내가, 그 사이에 어머니가 나갈 준비를 했다. 햇반을 많이 챙겨갔고, 나중에는 쌀을 사서 냄비밥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유럽에서도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스위스 셋째날. 인터라켄 동역에서 8시 35분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으로.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뮈렌으로. 산악열차가 톱니바퀴로 철컥철컥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부모님의 두 눈은 창 밖에 못 박힌 듯 했다. 높은 산이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이어지니 그럴 수밖에. 뮈렌에 내려서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밑동만 남은 뮈렌 나무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얼른 찍을 수 있었다. 다섯 식구가 마치 지구방위대처럼 포즈를 잡고 나무 위에 올라서서 찍은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난다.


워낙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에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탄다. 원래는 융프라우요흐에 가려고 했는데, 스위스패스를 갖고 있어도 한 사람당 13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기에, 2018년 패스를 갖고 있으면 무료인 쉴트호른- 피츠 글로리아(Piz Gloria)로 갔다. 아버지는 워낙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좋아하시니 007 '여왕폐하 대작전'을 찍은 장소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융프라우요흐에 가는 것보다 쉴트호른으로 간 건 정말 신의 한수였다. 올라가는 탈 것이 다양하고, 중간에 전망대를 걸어본 것도 좋았다. 피츠 글로리아는 2970미터로 정상에 올라서면 제임스 본드 모형같은 것들이 있어서 재미나다. 부모님은 본드, 본드 걸 흉내를 내며 즐거워하셨다. 360도 돌아가는 식당에서 '007'이라고 시나몬 가루를 뿌려주는 카푸치노와 스위스 현지 밀맥주를 마시고 뮈렌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이런 풍경을 내다보며 점심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풍경.



라우터브루넨으로 내려오기 전에 잠시 들른 곳, 알프스 산 속의 자연 놀이터, 알멘트후벨. (Allmendhubel)

푸니쿨라르를 타고 올라간다. 스위스패스가 있으면 표가 반값. 푸니쿨라르에서 내리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높은 산과 놀이터. 나무와 돌로 만든 놀이터로 마침 근처 호텔에 투숙하는 어린이들이 단체로 놀러왔다. 우리 가족도 멋진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그네도 타고, 펌프질을 해서 물놀이도 해보았다. 이런 곳에서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무척 부러웠다. 



라우터브루넨으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트륌멜바흐 폭포로 갔다. 그 곳에 간 까닭은 오직 하나! 셜록 홈즈에서 모리아티와 대결을 펼쳤던 폭포가 바로 트륌멜바흐 폭포이기 때문이다. 직접 보기 전에는 아주 큰 폭포 한 줄기가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10개의 폭포가 굽이굽이 흘러 내려오고, 그 폭포를 위에서부터 걸어내려오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오로지 현금만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수량으로 바위를 깎아내리며 흘러가는 폭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관. 중국 여행을 여덟번이나 다녀오신 아버지도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즐거워하셨다. 고막과 심장을 때리는 압도적인 소리, 깎아지른 절벽으로 쏟아지는 물보라. 정말 장관이었다. 스위스 여행 마지막날. 워낙 물가가 비싸서 더 길게 머무르지 못하고 다음날 이탈리아로 이동한다. 한낮의 더위가 물러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인터라켄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미리 짐을 다 챙겨두고, 어김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스위스, 안녕!

이전 04화 UP&U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