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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May 25. 2022

난 부럽지가 않어.

요즘 나는 부러운 게 없다. 심드렁한 어투로 '너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부럽지가 않어.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 라고 읊조리듯 노래하는 장기하 같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현대 어른이 가져야 할 매너였다. 남이 뭔가를 샀을 때, 첫째는 깜짝 놀라 주고 관심 가져주기. 둘째는 부러워해주는 것. 설령 그것이 생전 처음 들어본,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전자기기 같은 것일지라도 그래야 한다. 예의를 갖춘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보인다.


바나나 껍질 벗기듯  마음을  꺼풀만 까고 보아도 속은 그리 부럽지가 않다.  혹은 그녀행복해 보이니 방해할 생각은 없고, 적당히 맞장구쳐가며 흥을 깨지 않도록 반응도 해간다. 그러나 결국 들통은 난다. 마법의 문장, 너도 해볼래? 혹은 관심 있으면 같이 갈래?라는 말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솔직히  취향은 아니야.  같으면  돈으로 다른  사지.  시간에 다른 곳에 가거나.) 괄호 속의 말은 짓눌러 놓고 적당히 둘러댄다. 나한텐  어울릴  같아. 아니면 나한테는 너무 어려울  같은데.라는 식으로 도망간다.


해보자 보다는 하지 말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재밌어 보이는 것보다 본격 취미에 돌입하기 위해 드는 시간, 비용, 에너지를 더 고민하게 된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피곤해진다. 하얀 도화지를 펼쳐 색연필을 고르며 어떤 색을 칠할까 설레던 시간들. 해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PC게임들. 혼나면서도 멈출 줄 몰랐던 그 행위들은 이제 다 옛일이다.


그러다 최근 부러운 게 생겼다. 길가다 보게 되는 웃고 있는 사람들이다. 핸드폰을 보고 걸어가며 미소 짓는 젊은 여자, 통화 중에 박장대소하며 웃음 터진 청년, 아이와 하교를 같이 하는 엄마의 행복한 얼굴은 나를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든다. 누구도 훔칠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그 사람들만의 것. 소중한 일상들이 안겨주는 기쁨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고 값으로 살 수도 없단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모기가 사람의 피 냄새를 따라 달라붙듯 인간은 결핍을 찾아내 자신을 괴롭힌다. 성장을 위해서든 돈을 위해서든 이유야 수만 가지다. 이대로도 완벽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자만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내가 충분하다는데 세상을 아직 모른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결국 자신처럼 괴로워져야 그제야 어른이 되었다며 그 또한 이겨내라고 윽박을 지른다.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은 서울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밤길을 산책해보련다.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자식 많은 사람도 아니고, 친구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그래도 행복할 이유야 많다. 난 네가 부럽지가 않아.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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