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n Jan 13. 2023

번호 물어보기 실패담

헌팅의 역사

쓸까 말까 고민하다 역시 남의 흑역사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글을 쓰려한다.


오늘은 모태솔로의 헌팅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꽃다운 스무 살 때다. 벚꽃 바람에 마음이 미쳐버린 탓인지 머리에 꽃을 달고 거리를 쏘다니던 소녀 감성 깃든 청춘이었던 나는 어느 날 신에게 점지받듯 무한한 자신감이 퐁 하고 솟았다.


동네 대학가를 걷다가 검은 옷을 세트로 입고 모자를 푹 깊게 눌러쓴 남자에게 반해 그의 앞을 막고 혹시 범호 주실 수 있나요?라고 당당히 물었다. 소심해서 여자 친구 없으시다면 하고 붙였지만. 고백은 남자의 굉장히 난처하다는 표정과 미안함이 섞인 어색한 대화로 거절되었다.


나는 그 길로 뒤돌아 도망갔다. 언니는 갸웃한 표정으로 자신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헌팅을 왜 너는 실패했을까 분석하는 표정과 당황스러움이 한데 섞인 알굴이었다. 그때 날 안아주며 토닥거렸던 언니의 말은 내게 용기라기 보단 충격을 자아냈는데 남자는 많고 잊고 다시 괜찮은 남자 보면 적극적으로 대시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죽고 싶을 만큼의 쪽팔림과 화끈 거림은 지금 생각해도 창문 열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나의 흑역사기도 하니까.


두 번째 나의 번물은 자그마치 사내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람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게 있다. 연애 경험 전무하고 이성으로부터 고백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잘생긴 남자의 친절함과 호의는 고백 수준이었으므로 그때 몰래 그에게 쪽지를 주었다.


거절을 말로 들을 것이 걱정돼 거절하시는 거면 말없이 쪽지만 버려주시라 메모를 남겨놓았는데 그 쪽지는 버려졌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생과는 굉장히 어색하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랬다. 정말 내가 되돌리고 싶은 게 몇 가지 없는데 그 고백은 정말 머리를 깨부수고 싶을 만큼 후회한다.


얼마 후 아르바이트생은 그만뒀다.


멀쩡한 아르바이트생을 관두게 만든 일을 하고 난 후 나는 몇 개월 동안 그 충격에 사로잡혀 괴로웠다. 다른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봐도 왜 하필 그 타이밍에?라는 생각에 잠 들만 하면 이불킥을 했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헌팅의 역사는 뭐 젊음의 용기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수치 그 자체의 현장이었다.


잊어야 하는 건 잊고 싶은데 안 잊힌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번호 물어보다가 정말 큰 일 날 뻔한 마지막 경험. 동네에서 잘생긴 남자에게 번호를 물어봤는데 너무 차갑게 거절을 당해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남자는 가던 길을 갔는데 같이 있던 언니가 날 부축해서 데려가줬다. 그 이후로 헌팅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오죽하면! 헌팅까지 하면서 연애를 하려고 했을까라고 나 자신이 불쌍해지면서도 그렇게도 끼를 못 부려서 번호도 못 받아내는 내가 한심했다.


아무튼 될놈될이라지만 ㅋㅋㅋ 아름다운 헌팅의 기억이나 추억이 있으신 분들이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분들의 추억의 힘으로 내 흑역사가 좀 희미해지게 망각 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짝사랑만 17년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