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의 역사
쓸까 말까 고민하다 역시 남의 흑역사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글을 쓰려한다.
오늘은 모태솔로의 헌팅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꽃다운 스무 살 때다. 벚꽃 바람에 마음이 미쳐버린 탓인지 머리에 꽃을 달고 거리를 쏘다니던 소녀 감성 깃든 청춘이었던 나는 어느 날 신에게 점지받듯 무한한 자신감이 퐁 하고 솟았다.
동네 대학가를 걷다가 검은 옷을 세트로 입고 모자를 푹 깊게 눌러쓴 남자에게 반해 그의 앞을 막고 혹시 범호 주실 수 있나요?라고 당당히 물었다. 소심해서 여자 친구 없으시다면 하고 붙였지만. 고백은 남자의 굉장히 난처하다는 표정과 미안함이 섞인 어색한 대화로 거절되었다.
나는 그 길로 뒤돌아 도망갔다. 언니는 갸웃한 표정으로 자신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헌팅을 왜 너는 실패했을까 분석하는 표정과 당황스러움이 한데 섞인 알굴이었다. 그때 날 안아주며 토닥거렸던 언니의 말은 내게 용기라기 보단 충격을 자아냈는데 남자는 많고 잊고 다시 괜찮은 남자 보면 적극적으로 대시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죽고 싶을 만큼의 쪽팔림과 화끈 거림은 지금 생각해도 창문 열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나의 흑역사기도 하니까.
두 번째 나의 번물은 자그마치 사내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람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게 있다. 연애 경험 전무하고 이성으로부터 고백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잘생긴 남자의 친절함과 호의는 고백 수준이었으므로 그때 몰래 그에게 쪽지를 주었다.
거절을 말로 들을 것이 걱정돼 거절하시는 거면 말없이 쪽지만 버려주시라 메모를 남겨놓았는데 그 쪽지는 버려졌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생과는 굉장히 어색하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랬다. 정말 내가 되돌리고 싶은 게 몇 가지 없는데 그 고백은 정말 머리를 깨부수고 싶을 만큼 후회한다.
얼마 후 아르바이트생은 그만뒀다.
멀쩡한 아르바이트생을 관두게 만든 일을 하고 난 후 나는 몇 개월 동안 그 충격에 사로잡혀 괴로웠다. 다른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봐도 왜 하필 그 타이밍에?라는 생각에 잠 들만 하면 이불킥을 했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헌팅의 역사는 뭐 젊음의 용기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수치 그 자체의 현장이었다.
잊어야 하는 건 잊고 싶은데 안 잊힌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번호 물어보다가 정말 큰 일 날 뻔한 마지막 경험. 동네에서 잘생긴 남자에게 번호를 물어봤는데 너무 차갑게 거절을 당해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남자는 가던 길을 갔는데 같이 있던 언니가 날 부축해서 데려가줬다. 그 이후로 헌팅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오죽하면! 헌팅까지 하면서 연애를 하려고 했을까라고 나 자신이 불쌍해지면서도 그렇게도 끼를 못 부려서 번호도 못 받아내는 내가 한심했다.
아무튼 될놈될이라지만 ㅋㅋㅋ 아름다운 헌팅의 기억이나 추억이 있으신 분들이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분들의 추억의 힘으로 내 흑역사가 좀 희미해지게 망각 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