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행이 억울하게만 느껴진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언니가 내 등을 밀어주다가 내 척추가 만곡으로 휜 것을 발견했다. 엄마는 그날로 날 병원에 데려갔다. 찾아간 동네병원에서는 큰 대학병원을 권유했고 엄마는 사색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병원을 추천받아 서울대병원으로 예약을 집았다.
목부터 허리까지 방사선을 찍고 받은 진단명은 척추측만증이었다. 척추 수술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그분은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수술을 권했다. 수술비는 천만 원이었고, 알아보니 철심을 박는, 전신마취를 해서 진행하는, 수술하면 장애 등급을 받아 생활도 불편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수술이었다. 엄마와 나는 그 의사가 추천해 준 뼈의 만곡 진행을 막아준다는 보조기를 맞췄고 3년 넘는 시간을 코르셋과 같이 흉곽과 허리를 조이는 고통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엄마는 돌아와서 모든 것이 내 잘못된 자세 때문이라고 했다. 난 엄마가 나 때문에 많은 돈을 써야 했기에 그것이 미안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려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조기는 500만 원. 나는 그것만으로도 큰 죄를 진 것은 분명했다.
보조기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찼다. 일주일에 주번 체육 시간은 내게 지옥이었다. 쉬는 시간에 종 치기 전에 보건실로 달려가 보조기를 벗고 옷장에 보관해 문을 잠갔다.
어느 날엔 쉬는 시간이 끝나고 보건실을 갔는데 출입문이 잠겨있어서 보조기를 못 차고 수업에 간 적이 있었다. 행여나 애들이 놀릴까 전전긍긍하면서 다음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보조기를 찼다.
가끔 전체기합 받을 때면 엎드려뻗쳐 정도는 보조기를 착용한 상태로도 참고했고, 달리기도 그랬다. 나만 특별대우받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였다.
그러다 성장기가 끝나고 난 어른이 되었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그때의 기억은 조각조각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잘못한 벌을 받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필라테스를 배우게 되었다. 상담받는데 척추측만이 있다고 밝히니 선생님은 내게 특발성인지 후천성인지 물으셨다.
* 특발성은 척추가 휜 이유를 알 수 없는, 구조적이거나 기능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척추측만이 발생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방어적으로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또 내 잘못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은 내 예상과는 다른 예상외의 말씀을 하셨다. 요추만 휘었다면 잘못된 자세로 인함이 맞지만 흉추도 같이 각도가 크게 휜 거면 특발성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발견해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리고 문이 발칵 열렸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에서 원을 그리며 마음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왈칵 눈물이 났다.
네 잘못이 아니야. 150cm의 꼬마가 다 자란 어른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런 마음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내 불행이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원인이었다면,
내 행복은 특발성이 되겠노라고.
이래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유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고.
참 오래도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엔 이렇게 될 거였다. 기필코 행복해져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은 없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고. 행복도 그렇게 내게 찾아온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