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발에 적응한다는 것은 새 계절에 맞이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신던 신발이 떨어지곤 한다. 바닥이 닳거나 아니면 신발의 끈이 떨어지거나 해서 의도지 않아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신발을 사게 된다.
보통 계절이 바뀌면 이전 계절에 신던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놓고 새로운 계절에 맞는 신발을 신게 마련이지만 매번 그 계절의 끝에 신발이 떨어지게 되니 작년 이 계절에 신었던 신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새 계절이 오면 새로운 신을 준비하는 것이 하나의 의식 아닌 의식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되다 보니 한 계절 동안 열심히 신고 다니던 신발이 떨어질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아 이 계절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름 내내 신던 신발이 너덜너덜해질 쯤에 가을에 신고 다닐 신발을 준비했다. 매 계절마다 신발을 매번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지만 한 가지 더 어려움이 있다면 신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본래 신발이란 보기에는 예쁠지 몰라도 그 신발을 신고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매번 새로운 신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발 뒤꿈치가 까지고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바르고 그렇게 며칠에서 몇 주는 지나야 비로소 나에게 맞고 편안한 신발이 되는 것이다.
새 신발을 신으면 처음에는 그 신발을 신는 것조차 피곤하고 발은 아파서 신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이전 신발이 그립고 왜 이렇게 물건을 오래 쓰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한 몸처럼 그 계절 내내 그 신발을 신고 다니게 된다. 떨어질 때까지, 한 계절이 다 지날 때까지 내가 가는 모든 곳을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계절을 불살르고 나면 장렬히 전사하여 내 곁을 떠나간다.
누군가는 너무 한 신발만 신지 말고 여러 가지 신발을 골고루 신으면 쉽게 신발이 떨어질 일도 없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한 신발과 적응하기까지 그렇게 힘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여러 신발과 그럴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신발 저 신발을 신는 것보다 하나의 신발을 계속 신고 다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다. 상처와의 대치, 불편함과의 불안한 공존의 끝나고 나면 이 신발 외에는 다른 신발을 절대 신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가을과 함께 내게 온 이 신발과 익숙해지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이번만큼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적응하는데 힘들면 힘들수록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더욱 애정이 생기고 편안해지는 마음은 더욱 크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제는 완전히 편안해진 그 신발을 신고 연휴에 어디를 다녀왔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했던가. 칠흑 같은 밤, 맑은 공기, 맛있는 음식 등 모든 것이 좋았다. 마치 이 신발이 나에게 그런 기운을 가져다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렵게 친숙해진 만큼 다음 달까지 이어질 이 가을에 좋은 곳을 더 많이 다녀야겠다.
부디 좋은 곳으로 많이 데려다 주렴. 나는 이미 준비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