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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an 17. 2022

13-1.마침내 쿠바

[아바나]


마지막까지 해프닝


페루를 떠나는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라도 하듯 아침 하늘은 눈부실만큼 밝고 화창했다. 출근 시간대보다 조금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제법 막혔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수준까진 아니었고, 교통 체증을 예상하고 일찍 나온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리마의 아침은 밝았다
여행자 카드



리마 국제공항은 전 세계 남미 여행자 중 대부분이 가장 먼저 거치는, 남미의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 방문한 공항 중 가장 넓고 시설도 쾌적했다. 공항을 구경할 틈도 없이 우선 출국 절차부터 처리했다. 아비앙카 사무실로 가서 쿠바 여행자카드를 구입했다. 카드 1장 가격은 20달러. 고작 종이쪼가리가 뭐 이렇게 비쌀까 싶지만, 이 카드는 단순한 카드가 아니라 입국 비자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만약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쿠바에 입국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므로 더욱 신경 써서 보관해야 했다. 배낭은 전날 쿠스코 공항에서 수하물 서비스로 부쳤고 감사하게도 티켓 발권까지 함께 해결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출국심사대로 향했다. 남은 페루 화폐(솔,sol)를 처리하기 위해 매점에서 음료수를 구매했다. 일반 마트보다 훨씬 비쌌지만, 마지막 잉카콜라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잉카콜라와 치차 모라다를 홀짝이며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탑승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후의 잉카콜라



그런데 갑자기 아비앙카 항공사 직원이 스페인어로 안내방송을 하자마자 승객들이 일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눈치껏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뒤 곧바로 승객 무리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질서 있게 직원의 지시에 따랐다. 5분 정도 지나자 긴박했던 상황은 다시 안정됐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누군가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건을 게이트 주변에 놓고 갔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폭발물 처리반과 탐지견까지 출동한 모양이었다. 항공기 연착, 수하물 서비스 불가, 항공기 캔슬, 비행 출발일자 오해로 인한 소동에 이어 이번엔 폭발물까지.. 공항에서 겪을 수 있는 해프닝이란 해프닝은 겪어본 것 같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고, 줄을 섰다. 다시 한번 아비앙카에 감사인사를 올리고 비행기에 탔다. 아비앙카야 고맙다~





Hola, Cuba


리마에서 아바나까지 비행기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번 비행만큼은 지루하지 않았고, 이동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비행기를 자주 타서 그런 걸까, 아바나를 향한 기대가 높아서 그런 걸까? 재미있는 건 실제로 도착 예정시각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비행기가 안정적인 랜딩에 선보이자 파일럿의 비행 실력에 감동받았는지 여기저기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남미 여행하면서 비행기는 여러 번 타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우리도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시작부터 유쾌하게, 쿠바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온 공항만 해도 아홉 군데나 되고, 나라로 따지만 6개국(한국, 프랑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온 셈인데 쿠바 공항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복장이 그러했다. 몸에 딱 달라붙은 연갈색 제복에 망사스타킹을 신은 직원들이 많았고,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스타킹을 신은 직원도 보였다. 지금까지 방문한 각 지역의 공항 직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직원들은 보수적으로 옷을 입기 마련인데 이곳은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스튜어디스가 아니라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한 비율과 핏이 돋보였고, 멋있고 아름다운 직원들의 외모와 큰 키에 한번 더 놀랐다. 공산권 국가라서 더욱 사무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도 자유로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멋과 흥이 넘치는 쿠바는 공항에서부터 남달랐다. 


아바나 공항 풍경



여기도 올드카, 저기도 올드카


공항에서 호스트가 보내준 택시를 기다렸다. 꽤 오래 기다리고 나서야 택시기사와 만날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어제 공항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왜 오늘 왔느냐”고 말했다. 우리는 해프닝이 생겼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올드카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올드카보다 더 올드한 마차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온 마당인데 마차라니.. 도로 위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참신한 장면에 설렜고 흥분됐다. 도심에 가까워지자 올드카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쿠바하면 올드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올드카들이 눈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휘둥그레 커진 눈을 바쁘게 굴러가며 올드카를 구경했다. 우리나라 도로는 흰색, 검은색, 회색의 자동차로만 채워져 있어서 칙칙하기 그지 없는데, 이곳은 색상부터 남달랐다. 빨간색, 노란색은 기본이고 초록, 파랑, 갈색 등 도로 위를 여러가지 물감의 색으로 화려하게 칠해 놓은 듯 알록달록했다. 게다가 올드카는 색상뿐만 아니라 종류와 외형이 각기 달랐다. 올드카 한 대가 우리를 추월해 달려나가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올드카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쿠바의 올드카는 외관은 올드카지만, 엔진이나 기타 부품들은 버스나 트럭 엔진으로 교체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 못지 않는 성능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부 부품까지는 올드하지 않은 모양이다. 멋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그런 욕심. 좋은 태도다. 덕분에 숙소까지 가는 길이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 즐거웠다.



와, 올드카!



숙소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는데, 숨이 차지 않았다. 드디어 고산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계단을 올라 2층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니 친절한 호스트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호스트는 젊은 부부였고, 집은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복도와 방마다 그림과 인형,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수집한 것들로 세심하게 인테리어를 꾸민 듯 보였다. 게스트하우스와 모텔의 중간 느낌의 숙소였는데, 하룻밤 묵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천장이 아주 높고 방이 좁았지만, 공간감이 충분해서 좁다는 느낌 대신 아늑했다.


호스트는 우리에게 아바나 관광명소, 먹거리, 환전소 영업 주의사항, 택시 탈 때 꿀팁 등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환전소는 오후 3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었고, 대신 호스트에게 환전해야 했다. 조금 비싼 감이 있긴 했지만, 당장 저녁부터 먹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환전을 하고, 혁명광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숙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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