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
우리도 올드카 타봤다!
앙꼰 해변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구해야 했다. 광장에는 올드카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보자마자 “Taxi? Oldcar taxi!”라고 말하면서 다가왔다.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우리가 예상했던 가격대와 근접해서 아저씨의 제안을 별다른 흥정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올드카를 타는 날이다.
마침내 올드카에 탔다. 우리를 태운 올드카는 쿠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형의 빨간색 차량이었다. 차체가 커서 문 닫는 소리가 둔탁했다. 올드카 내부는 일반 차량보다 조금 더 넓었는데, 뒷자리는 성인 남성 세 명이 앉아도 넉넉했다. 시트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재질로 되어 있어 적당히 푹신했다. 기어가 있는 스틱 차량이었는데, 버스에서나 볼 수 있는 기다란 기어가 운전석 오른편에 우뚝 솟아 있었다. 핸들도 버스 핸들만 한 크기였다. 차량 계기판은 일반 차량보다 컸지만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라디오와 카세트오디오가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아서 그저 인테리어 용도로 설치되어 있는 듯 보였다. 창문은 옛날 방식대로 손잡이를 잡고 돌려서 여닫아야 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반적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올드카라는 이름이 붙으니 불편함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신기한 현상..
올드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도로 위를 달렸다. 내부 부품은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인지 소음이 심하지 않았고, 차량 프레임이 크고 튼튼한 덕분에 승차감은 일반 택시보다 묵직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승용차보다는 트럭에 가까운 승차감이었지만 생각보다 편안했다. 탁 트인 도로, 그 위를 달리는 올드카, 멋있는 자연 풍경까지!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 속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 했다. 이 순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신나는 노래 한 곡까지 틀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래도 만족스러운 첫 올드카 시승기였다. 트리니다드 시내에서 20분 정도 이동해서 앙꼰 해변에 도착했다.
와아아-! 말로만 듣던 카리브해(carribean sea)다. 사실 동해, 서해, 태평양, 카리브해 어디든 바다색이나 해변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리브해에 왔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보고 있으니 또 한 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해변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야자수 파라솔과 선베드가 휴양지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다. 어느새 내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샌들을 벗어 손에 들고 카리브해 모래를 맨발로 느꼈다. 해변가에서 보는 바닷물은 청명했고, 해변의 모래는 고운 편이었다. 마음 같아선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수건도 없었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서 발만 담그는 걸로 만족했다. 앙꼰 해변에 온 목적은 노을을 감상하기 위함이었으나, 아직 1시간 정도 남았고, 햇볕이 강해 잠시 쉴 겸 해변에 있는 바(bar)에서 쿠바 리브레와 모히또를 마시며 카리브해를 감상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로 카리브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 순간만큼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술을 홀짝이며 파도의 노랫소리를 감상하며 팔자 좋게 신선놀음을 즐겼다.
칵테일을 다 마시고 해변을 따라 쭉 걸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 모래 위를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들리는 소리,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만끽하며 걷다 보니 꽤 멀리까지 왔다. 노을을 기다리며 여러 컨셉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이제 점프샷은 기본이고, 영상을 켜놓고 빙빙 도는가 하면, 우유니에서 배운 타임랩스 기법까지 써가며 사진을 남겼다. 자연 풍경이 완벽해서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나왔다.
일몰이 가까워오자 해변의 색감이 더욱 선명해졌다. 태양이 수평선에 걸리니 이윽고 황금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노을을 충분히 감상했다. 태양의 형상이 점차 작아지자 마지막 불꽃을 발산하기라도 하듯 태양 주변이 붉게 타올랐다. 머리 위 하늘은 파스텔톤으로 덮여 있었다. 가장 어두운 때는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라는 말이 있는데, 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해가 지기 바로 직전이다.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고, 매순간 새로웠다.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쌀쌀한 한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노을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돌아온 탓에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조금 기다린 듯 보였지만, 괜찮다며 웃으시며 넘어가주었다. 트리니다드로 돌아가는 길, 네 명 모두 카리브해 노을에 취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고, 차 안에서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카리브해, 올드카, 칵테일, 노을, 선선한 저녁 바람.. 마음은 무장해제 상태가 되었고 감성이 충만해졌다. 이런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지
랍스터는 산호세 레스토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올드카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산호세 레스토랑으로 갔다. 식당 앞에는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도 대기표를 받고 40분 동안 기다렸다. 식당 분위기는 특별한 날에 맛있는 음식 먹으러 오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분위기였다. 옆 테이블에서 어떤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직원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특별한 날에 오는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한층 더 진해졌다.
가장 먼저 나온 칵테일로 먼저 목을 축였다. 처음 등장한 Entrada 메뉴(에피타이저)는 랍스터 칵테일과 해산물 수프였다. 랍스터 칵테일은 와인잔에 담겨 나왔는데, 랍스터의 탄탄한 식감과 신선함, 소스와 랍스터의 조화가 아주 훌륭했다. 싱싱하고 큼직한 랍스터 살이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었고, 입에 넣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해산물 수프는 게딱지 내장 맛이었다. 고소한 게딱지 장에 짭조름한 해산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시작부터 만족스러웠다.
4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메인요리가 등장했다. 우리는 4가지 요리를 주문했는데, 씨푸드 그릴(sea food grill), 레드소스를 얹은 랍스터, 각종 치즈를 얹은 랍스터, 해산물 빠에야였다. 모든 음식이 훌륭했고,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 입안에서 축제가 펼쳐졌다. 랍스터 식감도 탱글탱글하니 살아있고,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소스와의 조화가 좋았는데, 짠맛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랍스터의 풍미를 극대화했다. 특히 치즈랍스터가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3단 부스터처럼 입 안에서 치즈 풍미가 단계별로 다르게 느껴졌다. 랍스터가 제법 커서 크게 한 점 집고 입 안 가득 넣어서 먹을 수 있었다. 씨푸드 그릴도 구성이 좋은 편이었다. 오븐에 구운 랍스터, 대구살, 새우, 감자전, 바나나튀김이 나왔다. 씨푸드 그릴의 랍스터는 소스를 뿌리지 않았는데, 랍스터 특유의 오독오독한 식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해산물 빠에야는 진한 해물향이 퍼졌고, 간도 딱 맞았다. 랍스터 메뉴 한 접시당 20cuc이었는데, 한화로 계산하면 약 24,000원 정도였다.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음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쿠바에서 랍스터 먹기, 제대로 성공했다. 오직 산호세 레스토랑의 랍스터를 먹기 위해 트리니다드에 와도 좋을 만큼 만족스럽고 훌륭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