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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Mar 29. 2024

V&A, 루카스, 그리고 서리풀

미술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새로운 건축


2025년에는 기억해둘만한 가치가 있는 세개의 미술관이 개관 예정이다. 첫번째는 런던 V&A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분관인 East Storehouse다. 두번째는 LA에 위치할 루카스 뮤지엄, 우리가 아는 스타워즈를 제작한 바로 그 조지 루카스의 기부로 지어지는 미술관이다. 끝으로 서울 강남에 지어질 서리풀 미술관이 세번째다. 사실 서리풀 미술관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가 현재로서는 공식 명칭이다. 또하나, 개관 일정을 다시 알아보니 2025년보다 3년이 늦은 2028년에 개관 예정이다. 


시작부터 부정확한 정보의 정정보도같은 문장들로 시작하다보니 글 전체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말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 더 이상 완전무결한 신빙성에 연연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진행시킬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신빙성은 부족할지언정 이 메이져 미술관들이 보여주는 미술관과 미술품, 그리고 건축의 삼박자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만 확실히 전할 수 있다면 이 글은 성공한 것이다. 핵심은 미술관 창고와 전시실 사이의 경계에 있다. 


전통적으로 대규모의 컬렉션을 창고에 저장해두면서 큐레이터들의 기획에 따라서 그 중 일부를 전시실로 가져와 배치하는 식으로 미술관은 운영됐다. 미술관이 운영되는 방식에 따라 미술관 건물의 형태 역시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곳에 널찍한 예술품 보관실을 두고, 새로운 작품을 외부에서 들여오고, 보존 및 연구하는 공간 역시 제한구역에 배치하며, 전시공간만 일반 관람객이 접근하기 쉬운 동선에 맞춰 배치하는게 미술관 건축의 대강이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목격한 부분은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전시장만큼 넓은 공간이 '더' 존재한다는 말이고, 그 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추측만 할 뿐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크고작은 의문점들을 조금씩 조금씩 굴려가며 뭉치고 불려가다보면 아래와 같은 세가지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첫째, 우리는 왜 미술관의 방대한 컬렉션 중 일부만을 관람할 수밖에 없는가? 

둘째, 우리는 왜 누가 골라주는 작품들만을 정해주는 순서 혹은 배치구조에 따라서만 관람해야 하는가? 

셋째, 관람객들이 스스로 자신이 보고싶은 작품을 골라가며 볼 수는 없는가? 


첫번째 문제에 있어서 대략 두가지의 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시공간의 크기에 따른 제약, 그리고 작품들의 보안과 보존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림이나 조각, 혹은 디지털 이미지나 비디오 등 작품의 미디어 특성에 따라서 관람에 필요한 이상적인 공간의 요건이 달라진다. 단순한 예를 들어 사람의 키만한 너비와 높이의 그림을 보려면 적어도 4-5미터가량의 거리를 두고 바라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반대편 벽에  또 다른 대형 그림이 걸린다면 도합 10미터의 넓은 전시공간이 필요해진다. 혹은,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작품을 관람하려면 어두운 암실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시간에 따른 작품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온도나 습도를 일정 범위내에서 철저게 관리해야한다. 이런 환경 컨트롤을 위해서는 사람의 출입이 최소화되는 환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외부의 공기가 유입되고,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고, 사람이 배출하는 습기와 온도가 지속적으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보존 환경 관리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작품 훼손이 불가피해지거나, 혹은 환경 컨트롤에 드는 비용이 과도하게 커지거나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많고 많은 컬렉션 가운데 일부만을 제한된 기간 동안만 창고에서 꺼내어 대중이 볼 수 있는 전시실에 관람을 위한 최적의 형태로 배치해둔 뒤, 작품 보존에 무리가 가지 않을 시간 내에 기획전시를 마치고 다시 창고로 내려보내어 안정적인 환경에 두는 것이다. 창고 안에서는 관람을 위한 환경은 완전히 무시하고 작품의 상태 보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첫번째 사안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선 물리적인 환경이 핵심적인 요소라는걸 지적해야겠다. 두번째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논의가 불가피하다. 예술품의 창작과 큐레이션, 그리고 관람이라는 영역들이 과연 분리되는게 맞느냐 하는 등의 복잡한 논의들 말이다. 


우리는 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미 선택돼고 배치된 결과로서의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밖에 없을까? 그러고보면 나 스스로도 이렇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예술품을 소장할 재력이 없는 나로서는 늘 미술관에 찾아가서 작품을 관람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작품들은 내것이 아닌데다 작품들을 이리저리 움직일 권한 또한 쭉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재벌가의 손큰 컬렉터가 아닌이상 미술관에 보관될만한 작품의 소유권을 갖는건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내것이 아닌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배치할 권한을 갖는건 그만큼 어렵지는 않다. 큐레이터가 되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들은 미술품을 분류하고 어떤 작품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여줄지 판단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획에 따라서 작품들을 관람한다. 그들은 작품의 관람이라는 행위를 특정한 형태로 기획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일반 대중은 그런 권한이 없다. 대중들이 가진 미술품에 대한 욕구를 전시에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입김이 간접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고 말고도 전시 기획자에게 달린 일이다. 그렇다면 왜 - 일반 대중이 그 기획을 할 수는 없는걸까? 일반적으로 말했을 때 대중의 예술품에 대한 이해도가 큐레이터들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아니 예술품 보는게 스포츠처럼 좋은 운동신경 타고나고 연습 더 많이한 타자가 공을 더 잘 치는것처럼 그렇게 수준이 명백히 나뉘는 행위냐는 질문은 여기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그런 질문까지 던졌다가는 글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세번째 질문으로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더 잘 안다고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관객들이 스스로 보고싶은 작품을 골라서 마음껏 관람할 수는 없는가? 맥락을 첫번째 질문까지 확장해봐도 좋다. 작품의 관람과 보존에 공간적인 제약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관객들이 스스로 보고싶은 작품을 골라서 마음껏 관람할 수는 없는가? 이 지점에서 건축의 역할이 발생한다. 작품이 저장된 저장공간에 사람들이 드나들어도 보존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름대로 작품을 이리저리 뜯어볼 공간적인 여유가 마련되어 있다면, 미술관 공간이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형태로 지어진다면? 


그런 곳에서는 굳이 큐레이터들의 전시기획이 없더라도 관객들이 훨씬더 자유롭게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훨씬 더'라는 단서를 붙인건, 저장된 작품들의 기본적인 배치 구조를 결정하는 행위역시 중요한 큐레이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질 미술관이 빅토리아 알버트 East Storehouse이고,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다. 처음부터 눈치챘겠지만 이 두 미술관의 명칭이 이미 저장고라는데 핵심적인 정체성이 녹아있다. 이들은 대중이 접근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지어진 '저장고'이자, 선별된 작품만이 아니라 모든 컬렉션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전시장'이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저장고에서는 모든 컬렉션의 관람 뿐 아니라, 작품을 들여오고 보존하고 복원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문가에 의해 행해지던 활동 역시도 관람 가능한 영역 속으로 들어온다. 그러니까 작품을 둘러싼 모든 활동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별된 작품을 예쁘게 배치된 모습으로만 봐오던 과거를 생각하면 180도 달라진 미술관 체험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건물을 디자인한다는건 건물 속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디자인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런던 V&A의 경우 뉴욕 기반의 딜러 스코피디오라는 스튜디오가 디자인했고, 서리풀은 스위스 바젤의 헤르조그 드뫼롱이 디자인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루카스 뮤지엄은 자하하디드의 스타일을 계승했다고 평가받는 중국출신의 건축 사무소 MAD의 작품이다. 


루카스 뮤지엄은 숨좀 돌리고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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