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늘의 나는 일주일 후의 나와 동일한 존재인가

Horizon hills / Johor Bahru, Malaysia

by 달을보라니까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깹니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곧 해가 나고 금세 바닥이 쨍쨍해지는 열대 지방에서는 비를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내 몸은 이맘때 여름이면 어김없던 한국의 장마를 기억합니다. 포식자가 뼈에 붙어 있는 고기 조각이 없어질 때까지 실컷 먹고 버린 것을 차지하여 골수를 빨아먹던 호모 사피엔스가 생태계 최강의 포식자를 뛰어넘은 절대적 존재가 된 지금에도 사피엔스는 유전자에 새겨진 사바나 초원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축적과 탐욕을 부리는 것처럼, 몸으로 반복하여 학습된 것은 기억을 잊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앞이 보이지 않는 비를 뚫고 호라이즌 골프 & 컨츄리클럽에 왔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육로로 연결하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세컨드 링크라 불리는 투아스 국경에서 20km 거리의 말레시아 조호바루에 있는 럭셔리 코스입니다. Golf travel에서 꼽은 2017년 아시아 100대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스칸다 조호 오픈의 개최지이기도 합니다. 골퍼들을 기다리고 있는 카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뒤로 벽 한 면을 꽉 채우는 큰 사진에는 역대 우승자인 최경주, 패드리그 해링턴, 세르지오 가르시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 2009년 최경주 선수는 이곳이 아니라 로얄 조호 골프 코스에서 우승했지만, 마케팅은 원래 이런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이곳의 지명은 이스칸다 푸테리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의 앞 두 글자 Al이 알콜이나 알지브라처럼 아랍어에 흔히 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 Al로 오해되면서 떨어져 나가면서 여기서 그의 이름은 이스칸다가 됐습니다. 그리고 푸테리는 공주 혹은 딸을 의미하는 산스크리스트어에서 유래된 말이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사는 곳 모두가 그렇듯 커다란 유라시아판의 남서쪽 끄트머리인 이곳도 역사의 유통과 융합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커다란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바위 같은 강인함을 얻기를 기원하듯, 알렉산더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던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딴 지명과 이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30여 년에 불과했던 인간 알렉산더의 유한성은 그의 이름을 딴 도시들과 이야기들, 그리고 코란을 통해서 불멸과 영원을 이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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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클럽하우스로 걸어오는 길에 18번 홀 그린이 내려다보입니다. 그린을 노리고 날아드는 공들의 대부분을 해저드로 슬쩍 밀어내는 빠르고 어려운 그린이기에, 여기서 수많은 이야기와 드라마가 생겼을 것입니다. 게임을 마친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테라스에서 18번 홀 그린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안주는 거의 예외 없이 빠르고 어려운 그린에 대한 찬사 혹은 불평입니다.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코스다운 스펙터클한 레이아웃과 함께 평균 스피드 10.5로 관리되는 그린을 보면 이곳이 얼마나 도전적인 코스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USGA기준 8.5 이상이 빠른 그린으로 분류되고, US Open의 권고 스피드가 10.5 임을 고려하면 이곳 호라이즌 힐스의 그린은 아마추어 골퍼가 접할 수 있는 그린 중에서 가장 빠른 곳일 것입니다.


첫 홀은 널찍하고 장애물도 거의 없습니다. 아직 몸이 안 풀린 골퍼들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는 이런 시작이 좋습니다. 아까 10번 홀로 가라는 스타터에게 1번에서 시작하겠다고 고집 부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똑같은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찬을 몽땅 먹고 나서 밥만 먹지 않는 것처럼 여기도 이 코스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순서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오늘 이상하게 샷이 안된다고 푸념하고 누구는 이대로만 되면 좋겠다며 첫 홀을 마치고 두 번째 홀의 티박스에 서면 왜 이 코스가 세계적인 선수들을 불러다가 게임을 치를 만한 코스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두 개의 해저드로 삼등분되어있는 페어웨이의 오르막 끝자락에 그린이 있습니다. 우에서 좌로 늘어진 습지 위로 정확히 티샷을 캐리해야 페어웨이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일 수 있고, 다시 180야드를 잘 보내서 그린 위에 안전하게 도착해야 겨우 파를 노릴 수 있는, 그야말로 좋은 샷과 그렇지 않은 샷을 분명히 가려내는 홀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동반자 누구와의 경쟁이거나 설계자와의 싸움이 아니라, 티박스에서의 계획과 달라진 상황에 스스로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누가 견뎌내는가의 게임이 됩니다.


어려운 파 3 홀을 만납니다. 커다란 해저드와 깊은 벙커가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데다 옆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서 동반자들은 모두 안전한 오른쪽을 겨냥합니다. 한 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는 파 3라서 그들의 선택이 옳은 것이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리스크를 약간 줄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모든 곳에서 내 운을 시험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는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9번 홀 그린. 침목으로 무장한 벙커가 위협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길거나 짧은 어프로치를 그린 밖으로 밀어내는 솟은 그린과 빠른 그린 스피드가 함정입니다.


전반을 마치고 동반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잠시도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할 틈이 없을 정도로 다이내믹했던 지나온 홀들과 에어레이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10.5의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는 빠르고 어려운 그린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다가 마샬이 재촉하고서야 후반 홀들로 이동합니다.


라운드 내내 모두가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사실 어렵다는 말은 이 코스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명확한 책임관계라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매번 샷을 준비하면서 항상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하라고 채근하고, 샷이 끝나면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책임을 묻는 코스이기 때문에 전략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동반자들이 다음 주에 다시 오자고 합니다. 그동안 연습장에 가서 열심히 연습하고 오겠다고. 솔깃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연습이 과연 실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변수들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줄까 싶기도 합니다. 연습장 매트 위에서 마음에 드는 샷이 나올 때까지 비슷한 자세로 망치질을 반복하는 아마추어들에게 연습은 좋은 샷과 나쁜 샷의 합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오늘 아침의 기대와 희망은 스코어 카드의 냉정한 숫자로 흩어지고 이제 17과 18번 홀이 남았습니다. 여태까지 지나온 열여섯 홀은 이 둘 홀을 만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간의 모든 것이 서운하겠지만, 여기가 하이라이트이고 이 두 홀에서 모든 승부가 결정됩니다. 누군가는 다음 주에 다시 올 테니까 괜찮다며 적당히 하고, 누군가는 그 이유로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 또 누군가는 결정을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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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이 개인의 행위를 넘어선 역사의 맥락에서 읽힐 수밖에 없듯,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향한 이유도 단지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젊은 왕의 개인적인 야망보다는 그의 생애가 상징하는 헬레니즘의 역사성과 현재성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서양적인 것들의 원형이자 르네상스가 찾으려고 했던 잃어버린 기원이 그의 짧았던 생애에 말미암은 것임을 생각하면 그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 빠지지 않았던 전쟁과 파괴의 잔혹함이 최소한 서양의 시각에서는 역사적 정당성을 얻는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찬란함 이면에 그가 정복했다가 조각으로 나눠진 지역들은 때로는 영화 300의 괴물들이 사는 땅이기도 했고, 원정의 목적지 혹은 자원 확보 기지로 남겨진 외면받는 공백이었습니다. 그 공백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알렉산더와 헬레니즘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정당성에 동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러는 사이에 피정복자들은 정복자를 닮으려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능력과 권세를 흠모하고 염원하며 그의 이름을 바위에 새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산더는 세상의 끝에 닿았을 뿐 아니라 나 역시 이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말레이식 점심을 먹은 이스칸다 식당의 주인이 가게 이름의 기원을 모르듯 동반자가 추천하는 일본 락그룹의 음악을 들으며 싱가폴로 돌아오는 나 역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만든 융합속에서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 시간 속에서 개인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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