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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숫자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 그레고리 주커만 / 로크미디어

by 달을보라니까

투자를 잘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투자귀재라고도 불리는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시장을 꿰뚫어 본다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꾸준히 수익을 올렸는지는 거의 검증되지 않는다. 속된 말로 계좌를 까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이 책은 세상에 이름이 잘 알려진 워렌 버핏이나 피터 린치 같은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보였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짐 사이먼스의 전기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너어인 짐 사이먼스와 동료들의 무기는 수학과 알고리즘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서 금융상품과 시장을 분석했고 30여 년에 걸쳐 연평균 66%이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냈다. 이들의 투자는 가치투자를 위주로 하는 워렌 버핏 같은 일군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철학과 통찰이라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워렌 버핏류의 투자와 달리, 짐 사이먼스팀은 수학과 시스템 위주의 기계적인 분석과 투자를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시장을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몹시 궁금해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비법이나 공식 같은 것은 이 책에 없다. 만일 짐 사이먼스의 기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시간낭비다. 책의 대부분은 짐 사이먼스가 어떻게 팀을 꾸리고 유지했으며, 어떤 수학 원리와 기술에 관심을 가졌고, 위기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했는가이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팀은 구성원 각자가 모두 뛰어난 수학자이자 공학자였던 만큼 회사분위기가 학교 같았다고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다들 모여서 끝없이 토론하면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모두가 공유하는 전형적인 학교 혹은 스타트업 같았던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이 매우 회사원 같기도 하다. 윗사람이 나서서 정리해 줄 때까지 투닥거리며 권력다툼을 하기도 하고, 결국 해결이 안 돼서 대판 싸우고 누군가 팀을 떠나기도 한다. 보통 회사들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내 정치와 알력이 천재들이 모인 곳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동시에 시장을 만든것도 이기는 것도 인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이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다. 영문제목도 동일하다. 그래서 수학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최적화와 추세예측이 필요한 곳이면 금융, 항공, 천문, 토목을 가리지 않고 널리 사용되는 PDE, 라그랑쥐, 헤밀토니안, 스토케스틱, 마르코프 등등이 자주 언급된다. 수학이나 파생상품을 다뤄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업계 용어들이다. 책의 어디에도 그들만 알고 있거나 그들이 만들었다는 이론은 없는듯하다.


짐 사이먼스는 인간의 감정이나 판단을 배제한 알고리즘을 장착한 자동 트레이딩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의 팀에게 직접 그런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메달리언 펀드의 운영에 빈번히 관여하고 주요 결정은 직접 내렸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장 자체를 수학으로 풀어서 알고리즘화하는 데 성공했다기 보다는, 다른 것에 성공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딱 짚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국지적 불균형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추정하는데 효과적인 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시간이 흐르고 시장이 변할 때마다 꾸준히 이 모델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해서 유지보수해왔기 때문에 남들이 짚어내기 어려운 arbitrage 기회를 잘 포착할 수 있었다고 짐작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이 연구한 것은 시장자체가 아니라 시장에 반응하는 인간 행동을 분석한 것이다. 중단기적인 시장 간 불균형이나 금융상품간 주요 요소들 사이의 국지적 불균형을 다른 시장참여자들 보다 빨리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패턴으로 대응한 것이 이들의 성공요인일 듯하다. 그리고 이런 작업들은 누군가의 천재적인 발상이나 발견이 아니라,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 덕일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들의 성공 비결은 바로 30년에 걸친 꾸준한 투자와 노력이며 개인이 아니라 팀의 성과인 셈이다.


9장을 들어가는 발문으로 쓰인 다니엘 캐너만의 말이 책 전체를 잘 요약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숫자만 가지고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No one ever make a decision because of a number. They need a story". 감정 따위는 없는 수학과 알고리즘으로만 이루어진 트레이딩 머신을 꿈꿨던 짐 사이먼스 역시 스토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문본과 한글본 표지가 비슷하지만 한글본이 훨씬 깔끔하고 좋다고 생각된다. 영어본 표지는 금융시장을 통달한 천재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그 천재는 머리속에 가득한 남들이 이해못할 비밀의 수학으로 당당하게 시장과 대결한다. 시장과 싸워 이기는 천재 이미지가 오만해보인다. 반면, 한글본 표지에 있는 사람은 고민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도 수학자이고 천재겠지만, 이 사람은 시장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고민한다. 실제로 시장을 대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거의 모두가 실패하는 와중에 극히 소수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승률을 높여간다. 짐 사이먼스가 그랬듯이. 검은 바탕의 흰색과 오렌지 색을 섞어 쓴 것도 "수학자"와 "the Man"이라는 키워드를 돋보이게 한다. 다시 봐도 한글본 표지가 깔끔하다. 영문본보다 10배는 잘 만든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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