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버드, 마틴 셔윈 / 사이언스북스
이 책 표지는 깡마른 얼굴의 강한 인상을 주는 젊은 시절 오펜하이머 사진이다. 한글본 영어본 할 것 없이 거의 그의 사진이 쓰였고, 그가 인간을 위해 영원히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이고 미국인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표지는 책이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만든다. 인류와 문명을 전체주의의 위협으로 구한 위대한 미국이라는 프로파겐다와 이를 실현시킨 영웅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으로인해 고통받게 될 운명임을 알고서도도 그 길로 걸어들어간다는 서사는 너무 진부하고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이념의 광풍이라는 불행했던 시대의 희생자로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유복한 과정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서 또래집단에서 왕따를 당하고도 비굴했고 교수의 사과에 독극물을 바를 정도로 심성이 삐뚤어졌던 오펜하이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기회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거대한 성취를 했는데 왜 그는 핵의 확산과 추가개발을 반대했을까? 핵의 파괴력을 본 오펜하이머가 더이상의 대량 살상을 막고자 했다고 다들 말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최초로 핵폭탄을 만든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이고 멋진 일은 자신이 만든 위대한 업적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서 자신이 최초이자 최후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소아병적 객기와 이야기를 우리는 위인전의 프레임으로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인전이나 전기 혹은 평론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사람 개인보다는 역사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해석되곤 한다. 우리가 위인전을 읽는 프레임이 그렇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역사를 바꿨다는 관점에서 시작해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을사오적이, 히틀러가 없었다면 세상이 달랐을까?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없었다면 핵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