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헌트 / 교유서가
인권이 타인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했다는 가정에서 글이 시작된다. 소위 통속소설의 주인공들의 인생역전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과 역지사지의 감정에서 인간 모두에게 부여된 보편적 인권이 출발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의 혁명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고안되어 제도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는 말이다.
인권이 대체 무엇이냐 혹은 무엇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 인권이 언제부터 보편적인 것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왔는가를 추적함으로써 현재의 인권을 간접적으로 미루어 정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권의 문제는 역사적인 질문이 된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향유하는 인권이 이렇게 허술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혁명상황에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더불어 오랜 기간 특정 그룹의 인간들은 이 특권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 시대적이고 가변적임을 의미한다. 즉 현재는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표지가 거북하다.
표지인물은 18세기 아이티 노예해방혁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쟝자크 데살린이다. 콜럼버스가 상륙한 이래 아이티 지역에 살던 모든 원주민이 멸종되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납치해 사탕수수밭을 일궜고, 노예의 후손들은 식민지 모국 프랑스를 상대로 노예해방전쟁에서 찬란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빛나는 역사가 곧바로 황제를 참칭한 데살린과 일련의 혼란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아이티는 21세기 현재까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그런 데살린의 사진 뒷면에는 프랑스 인권선언의 문구들이 가득 차있다. 정말이지 역설적인 메시지다.
이 표지를 영어본 표지와 비교해 보면 선명한 대비가 있다. 여기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에 나온 인물들의 얼굴이 모두 지워져 있다. 영문 표지 역시 대충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군주제와 신분제를 위시한 구체제를 무너뜨린 것이 개별적인 개인이 아니라는 의미와,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것이라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공동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메시지가 영어본 표지에서 읽힌다. 사람들이 모두 아는 그림을 사용하면서도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저자의 메시지를 잘 전달한, 매우 공들여서 만든 표지로 보인다.
한글본 표지 역시 거북하지만 잘 만든 표지다. 노예인권해방 혁명에 곧바로 따라온 반동화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황제의 옷을 차려입은 흑인의 모습은 인권의 시대성과 상대성을 생각하도록 한다. 좋은 표지다. 또한, 데살린이 나폴레옹을 흉내 낸 것일 뿐 아니라, 프랑스가 자유국가가 된 아이티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100년 넘게 받아먹었고 그로인해 아이티는 세상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또 다른 역설을 생각하면 이 책의 표지에는 이중삼중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