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 클로드 레비스르로스 / 한길사
이렇게 유명한, 아니 전설적인 책을 읽을 때면 내심 걱정이 된다.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것들 때문에 자칫 보고 싶은껏만 보게 되서 결과적으로는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얻지못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단지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원전이 완전히 와전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원전의 특정 포인트만 전달되고, 그만큼 중요한 다른 포인트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많이 전파되어 퍼진 그 요약과 인용이 애초부터 글을 쓴 당사자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의 맥락과 동떨어진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온갖 형태로 확대재생산되면서 오해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어쩌면 명저란 많이는 팔리지만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농담처럼, 명저가 겪어야 할 유명세이기도 하다.
내용이 촘촘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슬픈열대는 만연체 기행문이다.
그가 브라질을 대하는 태도와 동파키스탄과 인도를 보는 시각이 매우 달라서 당황했다. 남미를 보는 그의 시선에서는 처음 보는 문화와 민속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자로의 관심이 분명한 반면, 남아시아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마치 패키지투어를 다니는 선진국 관광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가 남긴 인도와 벵갈에 대한 말의 대부분은 불결함과 혼잡에 대한 불평이기 때문이다. 글쎄, 그가 브라질에 있었던 시기는 20대 후반이고, 이 책의 일부가 쓰이고 나중에 발간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유네스코 문화사절로 동파키스탄과 인도를 여행한 40대였으니, 이 글은 10년 이상 그의 머리속에서 숙성된 셈이다. 그런 만큼 인도와 벵갈에 대한 그의 시선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또한 시기적으로 더 최신인 셈이다.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레비스트로스의 "다름"에 대한 이해는 그동안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인용과 요약 혹은 다른 사람의 강연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을 줬던 민족자결주의라는 고매한 원칙이 사실은 미국의 헤게모니 강화를 위한 외교전략이었던 것처럼, “여행은 우리에게서 말을 거두어간다”는 그의 유명한 문구는 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동시대 사람들보다는 앞서 있던 사람이다. 그 시절에 누가 야만인들과 문명인들이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친족의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었겠고, 나아가 사물과 관계는 전체의 체계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구조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로 인해 본질이나 실존이냐의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유명한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자리잡은 구조주의는 지금도 세계를 읽고 인간을 이해하는 틀이 되었다. 실로 치열한 최전선에서 싸웠던 사람의 기록인 거다.
오래전에 이 책이 있었는데 그건 어디 갔는지 없어졌고, 새로 나온 리커버판을 샀다. 표지가 너무 간단해서 좀 심심하다. 영어본과 불어본은 레비스트로스가 만났을 법한 사람들을 표지모델로 사용했다. 이해 못 할 문신과 자기 학대에 가까운 피어싱을 하고 있는 "야만"의 사람들이 "문명"에 사는 사람들과 근본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이 그 시대 독자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다른 한편, 왜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책에서는 서구처럼 원주민의 형상을 표지에 쓰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서구의 학문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우리 역시 저들과 우리가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지적을 서구인들 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외견상 서구인들에 비해 한군인들이 야만의 사람들과 더 가깝게 보인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그리고 열대 원주민들과 같은 범주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바램은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2중적 오리엔탈리즘의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