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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Aug 21. 2022

사서 하는 고생의 고단함이란

#4. 로스쿨 밤샘 공부의 처절한 추억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의 뜻은 알겠지만, 30대 중반이란 적잖은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넘치는 패기로 로스쿨행을 택하고만 나는, 그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나 무사히 지난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물어보면 일말의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한다.


'웬만하면 괜히 고생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 계속하는 게 나을 거예요.'


물론 이미 결심을 굳힌 이가 있다면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는 편이 낫다.


하지만 갈팡질팡 망설이고 있는 단계라면, 더구나 모험을 하고자 하는 이가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면, 현 직업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도와 근로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굳이 사서 고생하는 일은 만류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고, 그저 마음 닿는 대로 새로운 도전에 인색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내가 더 이상 도전을 적극 권장하지 않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사서 하는 고생이라는 게 적어도 객관적으로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은 아님을, 로스쿨에서 보낸 기간 동안 온몸으로 사무치게 깨달으면서다.   




브런치 서두에 적었듯 로스쿨 진학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법학에 대한 흥미도 있었고, 학창시절의 경험치로 비춰보건대 공부라면 그다지 뒤처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밥벌이에 익숙한 직장인에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그동안 모아둔 돈을 쓰면서 공부하는 자체에 대한 로망도 품어왔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런 환상은 로스쿨에 들어와서 통상의 커리큘럼을 밟는 초기에 바로 깨진다. 로스쿨에서 요구하는 공부량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고시공부를 해본 경험도 없고, 그때까지 인생에서 본 가장 큰 시험이라고는 수능밖에 없던 나로서는 더더욱 충격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때까지의 나는, 수능 3일 전 노량진에 자주 가던 지하 만화방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기분 내킬 때만 열공하는 타입이었다.


로스쿨에서는 평소에도 '열공 모드'가 디폴트 값이라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열심히 한다. 각기 스터디를 짜서 서로 답안을 확인해주며 채찍질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같이 열람실에 들어서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학기 중 다들 그렇게 나름대로 충실히 보내는 것 같아 보여도, 중간·기말 시험기간만 되면 소화 불가능한 범위에 필연적으로 허덕이게 된다는 점이다. 법학이라는 학문의 방대함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새벽 네시 무렵에도 로스쿨 근처 편의점에서 컵밥이나 삼각김밥을 먹는 동기들과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동기들보다 적으면 서너 살, 많으면 열 살까지 나이 많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스쿨 3년 동안 6학기에 각각 중간·기말고사를 봐서 1년에 4번, 총 12번 교내 시험을 치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시험시간표를 맞닥뜨린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월요일 오후 늦게 <물권법> 시험이 끝나는 일정인데, 다음날 아침 9시부터 <헌법>과 <채권총칙> 시험이 연달아 잡히고 말았다. (당시 커리큘럼이나 별도의 기록을 찾아보지 않아도 지금까지 과목명이 바로 떠오를 정도라니.)


세 과목 다 변호사시험의 주요 필수과목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물권법과 채권총칙은 그야말로 어렵고도 양 많은 민법이다. 시험 직전 주말- 물권법에 올인하자니 헌법과 채권총칙 두 과목이 쫄딱 망할 것 같고, 그렇다고 헌법과 채권총칙 책을 잡고 있자니 다음날 바로 있는 물권법 시험의 존재가 무겁게 다가왔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다가, 월요일 힘겹게 물권법 시험을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헌법과 채권총칙 시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민법이 더 부담돼 채권총칙 교재를 먼저 집어 들었던 것 같다. 물권법 시험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 공부를 시작하니 자정은 기본이고, 새벽 세시는 가볍게 넘겼다.


채권총칙에서 헌법으로 넘어간 시간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 필기해둔 판례의 문구며, 법조문을 절박하게 짚어나가는데 점차 시야가 환해지는 게 느껴졌다. 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야 하지 않을까.'


새벽에 편의점에서 동기들과 마주치는 게 일상인 비루한 로스쿨 풍경이라고 해도, 그 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는 밤을 완전히 꼴딱 새워본 적은 없다. 체력이 약해서 한두 시간이라도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인 뒤 시험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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