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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Aug 19. 2022

로스쿨 첫 중간고사, 망망대해를 건너듯

#3. '법학에 맞는 답안' 작성방법을 깨닫기까지의 고뇌를 되새기며

로스쿨에서 보내는 3년은 한마디로 '리걸 마인드'를 탑재하는 기간이다. 법학이라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학문의 바다에서 때로는 멈춰 육지로 돌아가고 싶고, 때로는 지쳐 가라앉을 것 같아도 사력을 다해 헤엄쳐서 남들 건널 때 같이 망망대해를 건너야 한다. 


이 기간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일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기장 같은 용도로서는 적합하겠으나, 감사하게도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겐 따분할 소지가 큰 데다 결정적으로 졸업하고 이사하면서 당시를 기록한 다이어리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의식의 흐름대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적어보려 한다. 다이어리도 현존(!)하고 가장 생생하고 또 중요한 로3 생활은 그럼에도 충실히, 또박또박 남겨두고 싶다. 브런치 연재를 결심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니까.   




인문대 소속으로 학부 내내 문학동아리에서 시를 쓰고, 과제나 시험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쭉 적는 서술형에 익숙했던 나는 로스쿨 입학 한 달 전까지 일을 하고, 곧바로 2개국에서 국제결혼을 요란하게 하고 온 덕에 선행학습은 전혀 하지 못한 채 훌쩍 다가온 로스쿨에서의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변호사시험 출제유형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전통적인 법대 스타일(?)의 내신 시험이 예고된 과목은 민법총칙이었다. 몇 년 치 족보에서 중복되는 문제를 내는 교수님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어렵지 않게 떠돌아다니는 족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족보를 봐도 문제만 있고 해설이나 답이 나와 있지 않으니 설령 똑같이 나온다고 해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두루뭉술한 에세이 형식의 답안이나 '통글(소제목 등으로 분설하지 않고 통째로 쓰는 글)' 기사 작성에 익숙한 나로서는 시험범위를 대강 읽고서도 족보 문제를 보고 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대비하던 중간고사 전야. 실수로 지갑을 안 가져온 날이 있으면 조용히 끼니를 거를 정도로 누구에게도 좀처럼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지 답안을 낼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힌 나는 급기야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로스쿨 동기이자 학부 동문인 동생의 팔소매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밤 10시 정도였던 것 같다.  


"족보 봤어? 나 지금 보고 있는데도 답안을 어떻게 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떡하지."

"아 누나, 그럼 이거 보실래요?" 


동생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A4 용지 출력물 몇 장을 은밀히 건넸다. 복사해서 안에 뭐가 적혀 있는지를 확인한 그날 밤 받은 충격이 지금도 선하다. 


세상에나. 그것은 해당 과목의 시험 대비를 위해 같은 학부의 법대 출신 다른 동기들과 그 동생이 조직한 스터디에서 작성한 나름대로의 모범답안이었다. '문제의 소재'부터 시작해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목차화한 뒤 '결론'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법학 답안 작성방식. 밤을 새워 법률용어며 교과서의 시험범위를 달달 외운들, 나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을 비법이 바로 거기에 담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그룹에 속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진 정보의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 씁쓸한 순간이기도 했다. 만약 동생의 팔소매를 붙잡지 않았다면, 혼자 끙끙 앓다가 무작정 시험에 임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아찔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의 깨달음을 토대로, 나는 열심히 흉내 내고 체화해서 점차 법학도스러운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게 됐다. 정글 같은 로스쿨 생활의 서막이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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