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방울 Aug 18. 2022

30대 중반 직장인의 로스쿨 첫 학기

#2. 선행학습 생략, 신혼여행 다녀와서 곧바로 법서를 펼치다 

통산 만 8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접고 로스쿨에 입학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첫사랑과 헤어지고 기약 없는 싱글로 지내다 퇴사하고 뜬금없이 호주에서 푸른 눈의 청년을 데리고 와 결혼한 사건(!)으로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


로스쿨 입학을 한 달 남겨두고 주한호주대사관과 종로구청을 왔다갔다하며 혼인신고를 한 뒤, 한국과 호주 양국에서 순차적으로 식을 올렸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1학년 1학기 수강신청은 호주의 느릿느릿한 와이파이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하는 통에 완전히 폭망했다. 


사실 손이 느리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 이후에도 수강신청은 꾸준히 실패했다. 인기 있는 교수나 강사의 수업은 남 얘기일 뿐이고, 그 외 자리가 나는 수업 위주로 시간표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깨닫게 된 점은, 그래도 괜찮다. 그 수업이 흔히들 말하는 '수험법학'과 한없이 거리가 멀어보일지라도, 법학 근육을 단단히 키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쨌든 사정에 의해 남편과 1년 반은 떨어져 지내야 해서 브리즈번 공항에서 눈물로 인사를 나누고 한국으로 혼자 돌아왔다. 부랴부랴 자취할 집을 구하고 나니 곧바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선행학습은 생각지도 못한 채 각종 기본서며, 법전, 교재를 무더기로 사서 무작정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난다. 


첫 수업은 형법총칙이었다. 일자형 벤치와 책상이 연결된 돔 형태의 1층 강의실. 적당히 칠판이 잘 보일 것 같은 자리를 잡고 앉아 교재와 필통을 나란히 두고 앞을 응시했다. 기자로 일할 때는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지 필통을 챙길 일은 없었다. 곧 교수님이 들어와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법학이론 수업을 시작했다. 나의 학부 학번과 로스쿨 학번의 간극은 14년. 사회인으로 적지 않은 기간을 정신없이 일하고, 커리어를 고민하며 보내다가 학생 신분으로 돌아온 게 비로소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한자로 도배된 현란한 법전이 어지러웠고, 천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기본서는 들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한글 법전을 본다든가, 기본서를 분책하지는 않았다. 한자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기본서가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감에 익숙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한자 법전은 야속하게도 내가 변호사시험을 마친 직후인 다음 시험(제10회)부터 한글 법전 전면 도입을 예고하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에 맞춰 주요 법률용어가 한자로 표기된 기본서들도 이제는 한글로 바뀌었을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거의 10년 만에 다시 하는 공부였지만, 법학공부도 '공부'니까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하는 다른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수강신청이 망해서 선배들이 '비추'하던 수업을 무더기로 듣게 됐어도, 해당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절대 듣지 마라, 그 시간에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게 낫다 등등)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냥 모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우직하게 앞자리에 앉아 교수가 시키는 대로 밑줄을 긋고, 강조하는 판례 문구에 정성껏 필기하고 형광펜 표시를 했다. 


형편없다고 소문난 수업이라도 동영상 강의로 대체하지 않은 이유는, 나는 유독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수가 한마디라도 하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 다른 교재를 본다든가 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걸맞지 않게 대면 수업방식을 선호한다. 


그렇게 동기 몇 명과 사례 스터디를 시작하기도 하고, 선행학습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수업 후에는 짬짬이 기본서를 읽어보면서 나름대로 잘 따라가고 있다고 착각했다. 


위기는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 때 찾아왔다. 


이전 01화 신의 직장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