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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an 12. 2022

육아, 지금까지 내가 놓친 것들

다시 잘 놀아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요즘 뭔가 심드렁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놀 때 시들시들한 반응을 보였다. 전보다 내가 달라졌다. 아이들과 놀 때 집중하지 않았다. 괜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들만 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하지 않는 이를 대할 때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관계가 냉랭한 것까진 않지만 별루다. 더 이상 재미가 없는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한 곳에서 우물만 판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딴생각과 딴짓을 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일단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다짐에서 연유한다. 글을 써야 한다. 매일 써야 한다. 이왕이면 잘 쓰고 싶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종일 고민한다. 이런 반복들이 나의 일상을 어지러 놓았다. 과도한 사명감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적당한 느슷함과 여유가 있어야 성취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글이 잘 쓰인 것도 아닌데 나는 무얼 바라 이리도 딴생각에 빠지는가.



두 번째, 성공인가 성취인가

성공은 타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게 이는 말 같다. 반면 성취는 자신에게 몰두하는 에너지를 집중하는 말이다. 내가 글을 쓰려는 게 누구를 보여주기 식이 라든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에 집중한 건 아닐까. 인정 욕구를 적당히 가동해야 할 것 같다. 인정 욕구가 점점 강해지면 주위 반응에 민감해진다. 결국 타인을 의식하는 글을 쓰게 된다.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글 속에서 자유로운 팽창을 원한다면 일단 나에 집중하는 글을 써야 한다. 나를 만족시키고, 나를 치유하는 글에 집중하는 것이 글쓰기의 첫 번째 관문이라 생각한다. 이제 막 문을 열었을 뿐인데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글에 대해 집중한 건 아닌지 고민한다. 나는 나대로 쓴다. 나는 지금의 내 태토를 지켜간다. 글을 내 안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과정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세 번째, 집안일을 대하는 나의 부정적인 태도

집안일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의 뿌리를 뽑아내야 할 것 같다. 집안일이 사실 너무 싫다. 내 시간을 좀먹는 시간도둑이라는 생각에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우울감의 극치를 달린다. 미리 해둘 것을 왜 해두지 않고 아깝게 새벽 시간을 날리는가.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 오디오북을 듣다가 유명인사들의 아침 루틴 중에 전날 빤 세탁물을 너는 과정도 있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를 단정히 정리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새벽 시간 동안 청소와 그릇 정리를 미리 해둔 덕에 낮시간의 여유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두면 집이 깨끗해지니 나에게도 좋다. 아이들이 다시 와 어질러도 생각하자. 그래 다시 치우면 되지. 아이들에게 당장 치우라고 닦달하지 말자. 아이들에게 정리의 필요성을 일러두되 할 수 있는 선에서 요구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높은 수준의 청소를 요구하는 건 실패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일 뿐.



네 번째, 보육과 학습 사이 고민

첫 째가 학교에 입학하자 보육에 치중하던 육아가 이제는 아이 학습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첫째는 다행히 학습결손 없이 학교생활을 잘 해왔다. 사실 그것은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건 아이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습량이 다른 학급보다 현저하게 많았던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씨 쓰기부터 받아쓰기, 연산 등은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만 충실히 해도 학업에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공부에, 특히 수학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 덕분이기도 하다. 독서 역시 꾸준히 하는 것도 아이의 기질에 연유하는 것도 맞다. 아이는 기질적으로 지식 탐구에 흥미가 높은 편이다. 도서관에 가면 좋아하는 분야에 책을 다 가져다 놓고 쫙 펼쳐놓고 집중해서 보던 아이였다. 그건 아이의 성향이다. 반면 아이의 부족한 면도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아이의 강점이다. 그렇다고 자꾸 엄마가 터치를 행하는 건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다. 적당히 느슨해지자. 아이는 이미 아이 수준에서 잘하고 있다. 괜한 엄마표, 엄마표, 엄마표에 현옥 되지 말자. 적정선에서 가이드를 해주는, 코치로서의 역할 수행 정도면 된다. 



다섯 번째, 중요한 건 아이와 엄마의 마음의 거리

점점 아이가 나와 멀어지고 있다면 얼마나 우울한가. 지금 중요한 건 좀 더 아이와 친해져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아야 한다. 나는 그런 추억들이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책이나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장난감 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건 물리적인 물질의 세계가 아니다. 충만하게 놀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함께 놀자고 할 때, 함께 놀이를 하자고 할 때 그 놀이에 집중하면 된다. 놀이를 자꾸 학습으로 연관시킨다거나 놀이가 지겹다거나 이런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릴 때 아이들과 내가 함께 놀았던, 그 몰입의 시간을 떠올리니 지금 우리가 얼마나 질 낮은 관계로 연명하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엄마와 나 사이 고민하지 말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두자. 지금은 엄마의 시간,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 그러니 우울해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아이들도 쑥쑥 큰다. 영원한 건 없다. 언젠가 다 내 품에서 떠나 제 갈길을 갈 아이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이 있어기에 나 역시 성장을 꿈꾸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세계로의 관문이 되어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못해준 것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의 시선으로 함께 즐기자. 즐기는 것만이 시간의 질을 높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몰입이라는 것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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