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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23. 2022

쓰지 못해 걸리는 병

나는 무얼 바라 읽고, 쓰고, 걷기를 열망하는가

통증이 찾아왔다. 잊고 있었던 요통의 고통이 다시 시작됐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프다는 느낌 뿐. 통증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몸은 더디게 움직인다. 내 몸은 내가 생각하는 의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그냥 아플 뿐이다. 원인은 모른다. 내심 짐작하는 건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쓰지 못해 걸리는 병, 읽지 못해 걸리는 병,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는 병. 이렇게 진단했다.



1. 쓰지 못해 걸리는 병


일단 최근에 집중해서 글을 쓰지 못했다. 몸에 기력이 다 빠진 상태 같았다. 기운이 없으니 생각이 둔해진다.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4일 이상 만보를 걷지만, 운동이 잘 되지 못한다. 몸의 움직임은 많아졌지만, 쉽지 않았다. 빠른 걷기와 달리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달리기는 몸상태가 여의치 않아 쉽진 않지만, 본격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모닝 운동은 힘들다. 새벽엔 남편이 없다. 애들만 두고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다시 운동할 시간을 정해야 한다. 건강한 몸이 갖춰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몸 상태와 함께 문제가 되는 건 나의 과욕이다.   


또 하나, 욕심이 많은데 도대체 뭘 쓰겠다는 건지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 아직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이토록 방황에 빠져 산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버려두고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것이 소설임을 아는 만큼 좀 더 집중하자. 써둔 글 중에 퇴고를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다 버리고 만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홀로하는 즐거운 글쓰기에 다시 전념하자. 함께하는 글쓰기는 여러모로 좋으나 에너지 소모가 많아 힘들다. 계속 이어가기보단 쉬는 게 좋은 것 같았다.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다. 몸도, 머리도 이 상태론 힘들다.


(좀 전에 다행히 명상을 하고 나니 통증이 좀 좋아졌다. 약간의 아픔이 남아있지만, 좀 나아졌다. 스스로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고, 아프지 않은 나의 상태를 상상해보면서 집중을 해본 시간. 놀랍게도 조 디스펜자의 말이 맞는 걸까. 아프다고 생각하니 더 아팠던 게 아닐까)




2. 읽지 못해 걸리는 병



좋은 책들이 참 많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인문학-나를 찾아 떠나는 세계문학여행도 신청했다. 읽은 책도 있지만, 읽기에 엄두도 안 낸 책들도 있다. 기대가 된다. 읽기에 집중하면서 나를 단련하려고 한다.



최근엔 은희경 작가의 소설에 빠져지냈는데 '빛의 과거'도 좋다. 물론 '중국식 룰렛'에 있는 단편들의 화법을 더 좋아하지만, 70년대 여대 기숙사 생활은 낯설면서도 낯익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동성과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불편함을 가득 안고 있었다. 화법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관심사가 많이 달랐다. 나와 친구로 지냈던 여성들은 개개인보다는 단체로 모여있을 때 좀 더 이해 불가한 생각과 판단을 많이 한다. 집단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나는 개인주의에 더 집중하는 친구들과 친해졌지만,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관계의 미성숙은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타의 엄마들과 소통이 잘 이뤄지지 못한다. 관심사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게다가 그들의 같은 동시대인으로 산 것도 아니다. 나보다 10년 늦게 태어난 엄마들도 많다. 뭔지 모르지만, 이는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일한 곳에서 만난 여성들은 주류에 편승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도 나와 유사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좀 더 연대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이가 어린 후배들을 만나면 잘 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유연함이 부족한 나의 결벽증 같은 취향 타령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저자를 보고 선택했다. 예전에 EBS 다큐를 준비할 때였다. 천장이란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장에 관한 책을 쓴 저자를 만나러 갔다. 신대방 쪽이었나 신대방 사거리 쪽 어느 카페에서 만났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저자를 보고 느낀 점은 섬세한 분이라는 점. 감정적인 섬세함이 있었고,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이 주류 분야가 아니기에 느껴지는 약간의 패배감, 아니 적대감, 아니 뭐랄까 표현하기 힘들지만 모호한 심드렁함이 있었다. 그분의 책이라는 걸 알고 도서관에서 바로 빌렸다. 언제나 그렇듯 티베트 이야기이다. 책 표지에는 '티베트어 수업이 들려준 삶과 죽음의 끝없는 속삭임'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1부 소리는 고독하지 않다.


티베트의 소리는 옴으로 시작된다!



단 이 두 문장만으로도 설레었다. 티베트에 가지 못해 아쉬운 나는 책으로 달래본다.

(2006년 나는 티베트에 가야 했다. 인도, 네팔, 파키스탄, 티베트. 현영을 따라가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티베트의 문화를 인도에서 아주 약간 느껴본 나는 티베트 다큐를 통해 다시 한번 공부를 했고, 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했고, 문명에 대한 고정관념과 기타 여러 판단과 세상의 기준점에 대해서도 판을 뒤집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만큼 나는 좀 더 직관적인 그들의 소리가 좋았다. 옴마니반메훔은 티베탄 꼴로니에 가면 흔히 들린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에서도 마찬가지다. 옴~으로 시작되는 그 떨림. 바라나시 메인 가트 한 귀퉁이 종이 설치된 재단 앞에서 나에게 명상을 알려준 그 인도 청년도 기억한다. 그도 맨 처음 명상을 위해 내게 알려준 소리는 '옴~~~'이었다. 몸을 소리통으로 사용하라고 했다. 뱃속에서부터 끌어내라고 했다. 나는 잘하지 못했다. 나는 서툴게 따라 해 보았다. 그 사이 한 꼬마가 나타나 종을 울려댔다. 그 와중에 명상을 했다. 새벽 시간이지만 해가 일찍 뜨니 아침이나 마찬가지다. 한 여름, 갠지스를 바라보며 명상을 연습했던 나는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반발짝 앞으로 내디딘 것이다. 그래서 더욱 떨리는 책이다. 저자가 티베트에서 겪은 경험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빚어진 책은 또 어떤 소리를 내게 들려줄까. 놀랍게도 저자는 시를 좋아하고 시인을 존경한다고 한다. 아, 그래서 소리가 시가 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가. 완독 후 정리를 해야겠다.





3. 가지 못해 걸리는 병



해외의 낯선 곳을 떠도는 일을 이젠 상상하기 힘들다. 두 아이가 있으니 홀로 있어도 완벽한 혼자가 되지 못한다. 가끔 떠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오래돼 가물거릴까 두려울 정도로 오래도록 가지 못한 홍대, 연남동, 신촌, 종로, 삼청동. 대학로 등. 홀로 도심을 배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사동 건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까지 순식간에 내 기억을 복원시켜줄 그 거리에 대해. 나는 무엇을 열망했던가. 무엇을 열망하고 또 열망했던가. 그런 마음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면 나는 눈을 감는다. 잠시 상상이라도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뭔가 자꾸 결과물을 바라는 내 욕심을 버리고 본연의 자아와 마주하는 순간을 고대하며. 영화를 보다가 생각한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대해 떠올리고, '어디 갔어, 버나넷'을 떠올린다. 버나넷은 나처럼 은둔해 살고 있다. 우울감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버나넷과 나를 이입하며, 버나넷이 남극 여행을 통해 생의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한 것처럼 내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버나넷도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생긴 마음의 병에 걸린게 아닐까. 이런저런 심적인 부담감을 버리고서 본연의 내가 가장 신나 할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그런 행위들에 집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통증이 완화되었다는 놀라운 경험과 함께 명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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