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훈 Nov 10. 2024

동아마라톤 대회 당일

일찍 자려고 누웠지만 긴장으로 잠을 설쳤다. 푹 자려고 했는데 2시경 잠이 든 것 같다. 기상 후 세수를 하고 어제 준비해 둔 식빵에 잼을 발라 두 장을 오렌지 주스와 마셨다. 탄수화물 중심이다. 짐을 챙겨 나서고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샀다. 카페인은 순발력과 지구력에 일시적인 영향을 주어 운동할 때 도움을 준다. 그래서 한 때 도핑금지약물로 분류된 적도 있다. 


지하철에 오르니 나와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로 붐빈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사람들의 차림과 행색을 저마다의 기록이 궁금해진다. '그을린 피부에 전문용품까지 장착한 저 이는 틀림없이 여러 차례 참가경험이 있을 거야' 나처럼 처음 참가해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벌써 기가 죽고 긴장감은 더해진다. 


집결지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온통 마라톤 참가자들이다. 평소 교보문고를 자주 가지만 광화문 지하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지하철 개찰구부터 세종대왕 앞 광장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8시에 대회가 시작되는데 진짜 마라톤 선수들인 엘리트 그룹이 제일 먼저 출발하고 기록에 따라 그룹으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출발한다. 나는 첫 출전으로 이전 기록이 없어 가장 후미그룹에 편성되었다.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몸을 푼다. 출발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 정도 남아있다. 곳곳에 설치된 임시 화장실은 이미 만원이다. 소변 한 번 보려면 수십 명의 줄 뒤에 기다려야 한다. 참을 수 없어 화장실이 있을 만한 다른 건물로 들어가 처리했다. 탈수를 염려해 어제 종일 마신 물이 과했나 보다. 


쌀쌀한 날씨에 긴장감까지 더하니 출발 전까지 네 번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많은 참가자들이 진행 아나운서의 힘찬 응원 멘트와 분위기에 맞춰 함성을 지르고 들떠 있었지만 나는 긴장으로 그러지 못했다. 드디어 출발위치에 섰다. 어차피 완주가 목표라 그룹 가장 뒤 편에 자리했다. 기록이 우수한 선두 그룹이 출발하고 드디어 내가 속한 마지막 그룹까지 출발을 마쳤다. 마라톤 참가를 권한 지인이 오버 페이스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러너들과 함께 뛰다 보면 페이스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시계 페이스를 주시하며 나만의 페이스로 느리게 달려 나갔다. 


그런데, 어라! 출발 후 30분 정도 지나자 또 화장실이 가고 싶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은 많았다. 달리다 말고 주유소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 대로 옆 공원 화장실에 뛰다 말고 긴 줄이 생겼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노상방뇨 하는 참가자들도 꽤 많았다. 출발 후 두 번이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다시 화장실 가는 일이 걱정되어 일정간격으로 준비된 물과 음료를 20킬로 지점까지 마시지 않고 헹궈내기를 반복했다. 충분히 물을 마신 탓인지 다행히 갈증은 거의 없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발하여 명동 쪽을 돌아 을지로 청계천 종로를 거쳐 신설동 답십리를 지났다. 평소 차로 지나는 도로 위를 달리니 감회가 새롭다. 곳곳에 동원된 응원 인파의 환호와 박수가 이렇게 반갑고 힘이 날줄 몰랐다. 


4시간 40분 풍선을 단 페이스 메이커를 쫓아 뛰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페이스와 같은 그룹이 형성된다. 그중에는 누가 봐도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릴 만한 백발의 러너들도 꽤 많다. 반대 차선의 나보다 훨씬 앞선 참가자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다. 대단들 하시다. 


다른 사람들 페이스와 속도를 무시해야 내 페이스를 지킬 수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옆 사람들 속도에 맞춰 뛰다 보니 4시간 20분 그룹에서 뛰고 있다. 오버페이스다. 여럿이 함께 뛰니 군중심리, 들뜬 기분 그리고 도로 양옆에 선 시민들의 응원으로 혼자 외롭게 뛸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다. 힘이 났다. 달리면서 시계로 꾸준히 페이스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빨리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시종일관 5시간 완주를 목표로 페이스를 계속 조절하며 꾸준히 달려갔다. 


달리면서 제공되는 바나나와 초코파이가 먹고 싶었지만 소화도 걱정됐고 챙겨간 에너지 젤이 있어 먹지 않았다. 20km 지점을 넘긴 후 준비된 스포츠음료와 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신설동을 지났고 답십리에 도착했다. 군자교를 향하는 지하차도 안을 다른 러너들과 함께 환호하며 지나쳐 집 근처 장한평역 쪽으로 향했다. 길 가에 응원 나온 가족들이 많아 보였다. 이쯤에서 가족들을 보면 힘이 날 듯했다. 가족에게 응원 나오라고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느덧 어린이 대공원 앞을 지나 구의동을 거쳐 드디어 잠실대교가 보인다. 대략 40km 정도를 무사히 왔다는 이야기다. 잠실대교 위는 온통 응원 나온 동호회, 가족, 친구들로 인산인해다. 꽹과리, 버스킹, 대형 스피커에서 흥을 돋우는 빠른 템포의 음악. 대회라기보다 축제에 가깝다. 생수, 스포츠음료, 콜라 심지어 캔맥주와 막걸리도 보인다. 이쯤에서 마시는 캔맥주나 막걸리는 얼마나 맛있을까? 


하지만, 나는 부정맥 환자이다. 마라톤에서 가끔 발생하는 불상사가 골인지점에 가까워서 많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레이스 막판에 술을 마시는 것은 몸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콜라를 들고 있는 분에게 한 잔 얻어마시며 왜 탄산음료를 주냐고 물었다. 탄산이 뱃속에 가스배출을 도와 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듯했다. 콜라의 당분은 에너지원으로 쓰일 것이고 탄산가스는 트림과 함께 위안에 찬 가스를 제거시켜 줄 것이다. 잠실대교를 건너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멀리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연히 같은 학회 활동을 하는 지인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물었더니 힘들다고 말 시키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사이좋게 나란히 골인지점까지 갈 생각으로 옆에 붙었는데 무안했다.  힘드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고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몇 미터 떨어져 조금 앞서 나갔다. 몇 달 뒤 학회에서 다시 만났는데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다음번에 나를 꼭 이기겠다고 했다. 무슨 개소리 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나를 경쟁자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규칙적으로 달리게 된 후 속도로 누구와 경쟁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내 페이스로 내가 정한 목적지까지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달리기로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달리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과 속도를 의식하면 페이스를 잃는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남의 시선을 있지 않고 오르지 내가 정한 목표와 페이스로 꾸준히 가면 결국 목표한 지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종합운동장 입구를 지나 경기장 트랙으로 들어오자 만감이 교차한다. 해냈다! 두 손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맑다. 완주에 성공하면 엄청난 기쁨이 밀려올 줄 알았는데 담담했다. 그저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내 페이스대로 지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내가 대견했다. 페이스를 잃지 않은 덕에 예상보다 덜 힘들다. 몇 킬로 정도 더 뛸 수도 있을 것 같다. 


레이스 중간중간에 포진한 사진기자들이 러너들에게 셔터를 눌러댄다. 대회 후 공식 사이트에서 배번이나 이름으로 내 사진을 찾아 파일로 받고 인화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잠실대교를 건너며 일부러 사진기자 앞쪽으로 무심한 듯 뛰었다. 고독하게 열심히 달리기에 집중하는 멋진 사진을 얻고 싶었다. 골인지점에서는 카메라맨에게 의식하지 않은 듯 적당한 포즈를 하며 들어왔다. 


광화문에서 맡겨놓은 개인 소지품은 도착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짐을 찾아 옷을 갈아입고 기념품 수령장소에 가니 간단한 간식과  완주 메달을 쥐어 준다. 메달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말 기쁘다. 풀코스 기념 티셔츠는 집으로 보내준단다. 손바닥에 메달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뿌듯하다. 결국 완주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예상외로 무겁지 않다. 근육통이 심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약간 절룩거리며 마라톤 완주를 티 냈다. 택시를 타기 위해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아! 올 것이 왔다. 계단으로 다리를 내딛는데 난간을 붙잡지 않고 내려갈 수가 없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통증이 평지를 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참을만하다. 마라톤 완주했으니까^^. 


택시 안에서 기사분이 마라톤 완주한 사실을 알아보시고 이것저것 물으셨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고기와 소주, 맥주를 섞어 당당한 축배를 들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 눕고 싶다. 그냥 누워서 쉬는 것보다 목욕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운동 직후에는 따끈한 목욕보다 차가운 냉수욕이 근육통을 줄이고 피로를 푸는데 훨씬 유리하다. 가까운 목욕탕으로 가 냉탕에서 한참 걷고 피로를 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