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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Nov 10. 2024

동아마라톤 대회 하루 전

대회 하루 전. 


복장은 반바지, 반팔티, 러닝캡, 러닝용 발가락 양말 그리고 마라톤 전용화를 착용하기로 했다. 대회가 있는 3월은 아직 아침, 저녁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도착직후 출발 전까지 체열손실을 막아줄 대책이 필요했다. 마라톤 준비를 소개한 자료 검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세탁소에서 세탁 후 씌워주는 비닐을 활용하고 있었다. 세탁 비닐에 목과 팔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구멍을 내어 입고 뛰다가 체온이 오르면 도로에 버린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우스웠지만, 아침 찬 공기에서 추위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옷장을 뒤져 비닐 커버가 씌워진 양복을 찾아 꺼냈다. 눈대중으로 머리와 팔이 나올 위치를 확인한 후 옷을 짓듯 정성스럽게 가위로 도려냈다. 비닐에 머리와 몸통을 넣은 후 거울을 보니 역시나 우습다. 당일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회용 우의를 입은 참가자들도 꽤 많았다. 진작 왜 저 생각을 못했을까? 


일주일부터 글리코겐 로딩(glycogen loading)이라는 것을 시도했다. 아니 흉내만 내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지구력 증강 비결로 강의하던 내용이라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탄수화물은 운동 시 가장 중요한 연료로 소화, 흡수를 거쳐 간과 근육에 글리코겐이라는 물질로 저장된다. 


우리는 저장된 글리코겐을 연료의 재료로 사용하여 운동과 생명유지에 사용한다. 근육 속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통장의 현금과 같다.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다. 근육이라는 통장에 글리코겐이라는 현금을 많이 저축하는 방법은 곡간을 깨끗이 비운 후 다시 새로운 곡식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전통적인 글리코겐 로딩 방법은 대회 약 일주일 전부터 강도 높은 훈련과 함께 탄수화물섭취를 제한하는 기간을 3일 내외로 갖는다. 


이때 식사는 단백질식품과 채소중심의 식단이 필요하다. 빵, 라면, 국수, 파스타 같이 탄수화물을 함유한 음식은 철저히 제한한다. 3일씩 이런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쌀이 주식인 한국인에게는 더욱 곤욕이다. 이 시기가 지난 후 대회직전까지 훈련량을 줄이며 체력을 비축하고 이전과 반대로 철저하게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한다. 이렇게 하면 몸속에 글리코겐 저장량이 늘어나게 된다. 


탄수화물은 몸에 저장될 때 물을 끌어안는다. 물은 무겁다. 체중감량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이유이다. 글리코겐 로딩을 하면 체중이 증가한다. 대회를 앞두고 체중이 증가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달려보면 확실히 덜 지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학생들과 선수들에게 이론적으로 강의만 하다가 실제로 해보면 강의에 도움이 될 수 있어 흉내는 내보기로 했다. 완벽한 글리코겐 로딩은 아니었지만 대회 일주일 전부터 3일 정도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다는 핑계로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첫 하루는 좋았다. 안 그래도 육식을 좋아하던 터라 채식위주의 식단을 못하는 게 찝찝했는데 당당하게 육식을 즐겼다. 딱 하루가 지나자 고기가 물린다. 밥과 김치가 당긴다. 어차피 체험 정도로 끝낼 터였다. 적당히 타협하며 3일 이후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에 도전했다. 


아들을 위해 아내가 올린 고기반찬을 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신 밥, 라면, 떡, 케이크 같은 것을 먹었다. 


3일 만에 1.5kg 체중이나 늘었다. 대회 전날, 물도 충분히 마시려고 노력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홀짝홀짝 마셔뒀다. 내일은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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