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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l 10. 2023

아카데미아에서 회복탄력성 기르기

#1.

오래 기다렸던 논문 사독의 결과가 왔다.

그 결과는 참담한 Reject. 지금까지 보지 못한 최악의 코멘트와 함께.

안 그래도 나 스스로의 성과에 대해 조바심을 내고 있던 터에, 오후에 도착한 그 메일은 나의 기분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원래 논문 Reject은 반나절만 슬퍼하라는데, 나에게는 트라우마였다보다. 저녁이 될 때까지도 멍한 나의 인지상태와 들쑥날쑥하는 정동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난 말들이 내 뇌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너는 쓸모없는 학자야"

"지금까지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 이게 너의 진짜 실력이야"

"남들이 이런 걸 알면 얼마나 널 우습게 여길까"

교수가 되고 첫 Reject를 당하니 정말 무엇인가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나마 전공의나 펠로우, 포닥시절에는 나를 토닥여주는 교수님들이 있었다. 이제 나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다. 

잠깐만.  Red Flag.

이건 분명히 내가 자기 비하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 했다.

회복탄력성. 어떤 위기상황이나 트라우마에 빠졌을 때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심리적인 원동력. 요새 내가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는 이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운동. 충분한 잠. 사회적 지지.

그리고 나를 충분히 응원해 주는 것. 

#2.

"너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 아마 엄격한 부모밑에서 성장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전공의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해준 말이다. 언뜻 반박하고 싶었지만 또 어찌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항상 너무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 밑에서, 나는 항상 인정받고 싶었다. 칭찬을 듣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내면 주로는 "더 열심히 해서 다음번엔 더 높은 목표를 이루자"는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점점 더 높은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취했다. 그 뒤에는 항상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던 나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계속된 인생의 고비들은 많은 것을 놓아주게 만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전에, 일단 위기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는 것부터 다시 배우게 됐다. 누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묵묵히 나의 일을 해나가는 법을 배웠다. 이방인의 땅에서 아무도 나에 대해 반응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개를 들고 나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과정 중에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에게 너무나 엄격한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떤 비난이나 역경도 이겨낼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힘을 갖게 된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하는 말이 큰 힘이 됐다. 회복탄력성은 결코 혼자만 스스로 쌓아 올리는 힘이 아니다.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많은 요인이 주변으로부터의 사회적 지지에서 나온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알려져 있다.

내가 미국으로 포닥 펠로우쉽을 지원했을 때, 사실 나의 멘토는 그해 펠로우를 더 이상 예산 문제로 받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대학 기관에서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의무적으로 지정한 멘토와 면접을 치러야 할 때도 그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일반적으론 멘토 한 명이 면접을 보지만, 나에 대해서는 멘토와 같이 일하는 시니어 급의 연구자들 몇 명에게 따로따로 1:1로 면접을 부탁하였다. 그만큼 나를 뽑는데 신중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후에 그들과 동료로서 일을 할 때,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OO, 네가 나와 면접을 마치고 내가 보스에게 전한말의 요지는 이거였어. 그녀는 강한 의지가 있고 또한 그녀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그것을 꼭 이루는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근데 그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면접자도 보스에게 했었대."

사실 이들은 모두 임상심리사들이다. 임상심리사 동료가 이렇게 말을 해준 데에 대해서, 그 이후의 유학생활에서 힘들 때가 다가와도 항상 이 말을 기억하며 힘을 내었다.

.....

사실 이 단락의 맨 처음 말도 정신과 의사인 동료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후에 나는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열심히 뒤져가며 평상시 내가 자동적으로 빠졌던 자기 비하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사고훈련"을 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도 벽에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방법 10가지"를 붙여두고 내 상태를 점검하곤 한다. 

#3.

학생들, 특히 박사심사를 앞뒤로 둔 학생들 중 몇몇은 나에게 자신의 자존감 문제를 이야기하곤 한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주변의 기라성 같은 업적들과 비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더불어  심사에서 이루어지는 비판(critic)을 내면화시키며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실제로 나도 내 박사심사는 너무 힘들었다. 3회의 심사가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좋은 말을 들어본 게 없었고 모든 비판의 파도 안에서 허우적댔었다. 때로는 심한 인격적인 모독인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마지막 종심을 앞두고 길을 지나는데 차가 내 앞을 지나갔다. 속으로 저 차가 지금이라도 나를 그냥 들이받았으면 하고 혼자 이야기하던 것을 남편이 듣고 놀라서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아카데미아에 산다는 것은 내 연구가 맞고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고독하지만 끝까지 소리쳐야 하는 길이야. 힘내." 

#4.

아카데미아에 산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것 같다. 실제로 출근해서 대부분을 방안에 혼자 앉아서 일을 하고, 점점 더 즐거움은 사람들 사이에서보다 나와 논문, 그리고 나와 책에 쓰여있는 내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평온함을 깨는 것은 Reject란 한 단어. 연구비든 논문이든 Reject란 말이 뜨는 순간 나는 또 자기 비하의 늪에 빠진다. 나를 구원해 줄 (?) 사람은 없다. 나 스스로 또 Reject mail 앞에 혼자 서있다.

그리고 노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65세까지 평생 그 Reject mail을 보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야 해"

괴롭지만, 또다시 나의 회복탄력성을 훈련하는 것.

그리고 나의 아카데미아에서 자존감을 지켜가는 것. 

아마 평생동안 해야 될 숙제인 것 같다.

마치 운동을 평생동안 해야 하는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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