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 Sep 16. 2023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타인의 인정과 끝없는 비교에서의 자유를 찾아 

1년의 미국 연수를 끝내고 한국에 왔다. 1년밖에 해외에 있지 않았지만, 한국사회에 재적응 하려다 보니 나름의 문화 충격을 겪었다. 돌아온 직장에서, 한동안 잊었던 “한국형 힘듦”이 다시 떠올랐는데,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뭘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첫번째는 우리가 다른 문화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회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하더라도, 내 생각보다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을 더 먼저 살피게 되는 것도 여전하다. 일을 할 때도 실제로 그 일을 잘해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SNS에서는 온갖 자기홍보성 글들이 가득하다. 자신의 잘나가는 커리어를 시사하는 포스팅은 물론, 자신의 세련된 취향이나 유머까지도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 나는 나의 고유의 시선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남들의 시선에서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곧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살아가게 된다. 인정중독과도 연관이 되어있는 맥락이다. 


두번째로 느꼈던 것은,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된 경쟁을 겪으며 살아왔고, 이제 타인을 바라볼 때 많은 경우 자동적으로 자기 자신과 비교하고 견주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때부터 (지금 아이들은 유치원때부터) 계속된 시험과 경쟁, 줄세우기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다. 대학에서 가르칠 때 발견한 것은, 많은 학생들이 고3때 보았던 대입 배치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을 타인을 판단하는 지표로 종종 삼는다는 것이다. 줄세우기의 지표에는 이와 같이 학벌이거나 재산이거나 사회적 지위, 혹은 신체적 매력 등의 요인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에 대한 이상한 형태의 우월감 혹은 열등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늘 우위를 점했다고 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에서 벗어나고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끝없이 일하기 시작한다.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과 연구실은 열정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불안감의 발현일 수도 있다. 강의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이야기하며 일과 삶이 조화되는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본인은 공부하고 랩 인턴할 때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게 좋아보인다고, 그래야 빅페이퍼를 낼 수 있고 교수님들도 좋아하는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랬더니 그 학생이 “50살까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데?” 

 

세번째는, 우리는 모두 “스마트”하게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것에 “똑똑한 정답”이 있다는 믿음.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시간을 쓰는 것도 “가장 똑똑한” 정답이 있다. 그럴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나에게 똑똑해지라고, 스마트하게 살라고 하는 것 같다. 대부분 이런 스마트함은 군중속에서 형성되며,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스마트함에는 성공과 다른 사람들의 선망이라는 개념이 깃들어 있다. 스마트 딜, 스마트 공장, 스마트 시티… 이렇게 스마트라는 말이 붙은 말들은 모두 긍정적인 함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스마트하다는 것은 곧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마트함은 실패를 포함하지 않는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거부한다. 많은 경우 스마트함은 자기중심적인 시각에 근거하며, 타인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완성된다. “루저” 혹은 “호구”라는 단어들은 스마트함의 반대일 수 있다. 결국 나는 손해를 보지 않아야 된다는 것, 내가 가장 이익을 얻는 플레이가 옳다라는 태도, 어쩌면 이러한 태도가 “스마트”함과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이러한 세 가지 모습은, 1년 전의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해외연수기간동안 잠시 그런 문화를 떠나 있어 잊고 었던 나의 모습과 다시 조우하니, 지금 내가 어디로 다시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기간동안 SNS를 중단했고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였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 주변에 호수가 있어 하루에 50분씩 달렸는데,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주변에 달리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야 했다. 비록 누가 내 곁을 더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간다고 해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지 않으면 50분을 채워 달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면서, 앞으로의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남의 시선으로 살기보다 내 자신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 비교하지 않는 것, 너무 “똑똑하게” 살지만은 않는 것. 다시 돌아온 힘든 현실이 나를 좌절시키고 있지만, 지난 1년동안 내가 배운 것들을 결코 잃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언제부터 우울증은 정신과의 얼굴이 되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