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불안증,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하여
우울증은 정신과 질환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진단 빈도가 높고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도 우울 혹은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며("나 우울해", 그 사람 우울증 아닐까?"), 의학을 넘어서서 사회적 언어로서도 우울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인다("사회적 우울", "시대의 우울").
그러나 처음부터 우울증이 정신과의 대표질병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출판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3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DSM은 정신과 진단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기준에 따라 정신과 질환들이 진단된다. 그런데 이 DSM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 군에 속해있던 정신과의사들이 기존의 체계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기 위해서 1952년에 처음으로 1판을 발간하였다. DSM 1판은 프로이트(S. Freud)의 정신분석적 기법과 와 마이어(A. Meyer)의 생애주기적 접근(life course approach)을 혼합하여 반영하였다. 이때에는 정신질환이 연속된 현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정신질환과 정신건강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질환은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신경증(neurosis)"이었다. 모든 사람은 아주 적은(minimal) 신경증에서부터 극도의(severe) 신경증을 갖고 있다고 설명되었다. 이러한 기반에 따라 우울반응은 기저의 불안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졌다. 이는 그 뒤 1968년에 출판된 DSM 2판에서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970년대 전까지는 정신역동 이론이 보편적이어서 정확한 진단명의 필요성이 적었다. 또한 건강보험 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환자가 치료비 전체를 스스로 부담하여, 보험회사에 특수한 질병명을 넣어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특히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의 제약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넓은 증상들을 커버하는 약들을 주로 출시했는데, 예를 들어 스트레스, 긴장, 불안 등을 타깃으로 하였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하였고, 기존 DSM 체계의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그중 첫 번째는 기존의 DSM을 통하여 의사마다 다른 진단을 본인들이 직관에 다라 내린다는 것이고, 이러한 낮은 신뢰도(reliability)는 다기관에서의 정신과 연구를 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정신과 의사들은 임상심리사나 사회복지사와 도그들의 전문성에 있어 충돌했다. 1960-70년대에는 기존의 정신분석이나 정신역동 이론에서 나아가 생물학적인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사조 아래 뇌 구조나 기능이 정신질환에 미치는 영향들이 강조되었다. 또한 무엇보다 정신과 약물이 진화하여, 한 약물이 특정 질환을 타깃 하는 현상이 주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보험제도가 보편화되었는데, 이때 환급을 위하여 특정 질환의 질병명이 필요하였다.
드디어 1980년, 앞에서 이야기했던 DSM 3판이 발행되었다. 이는 기존 1,2판과는 전혀 다른 구체적이고 증상 기준의 분류로 이루어진 체계였다. 이는 어떤 이론(정신역동 이론) 중심이었던 기존의 진단체계에서 무이론(atheoretical) 중심의 진단체계로 탈바꿈하며, 증상의 원인에 대해서 특정하지는 않는다 (외상 후스트레스 증후군, PTSD는 예외이다). DSM 1판과 2판의 주역이었던, 신경증으로 대변되던 불안은 이제 주도권을 우울에게 내줘야 했다. 불안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고 9가지의 하위개념으로 개별범주화하는 과정에서 정신신경증(psychoneurosis)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으며, 오히려 넓은 범주의 정신사회적인 문제들은 주요 우울증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전까지는 멜랑콜리아로 대변되던 우울증의 정의에, 일반적인 스트레스반응이 모두 우울증의 정의로 넘어오게 되면서 우울증은 그 몸집을 키우게 된다. 우울증의 새로운 DSM 정의에는 2주 동안 나타나는 9가지 중 5가지 증상을 만족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1) 우울한 기분; (2) 활동에 대한 흥미나 쾌락의 감소; (3) 체중 증가 또는 감소 또는 식욕 변화; (4) 불면증 또는 과잠 (과도한 수면); (5) 신체 운동 과다 또는 저하 (느림); (6) 피로 또는 에너지 손실; (7) 자기 가치 감소 또는 지나친 또는 부적절한 죄책감; (8) 사고나 집중능력의 저하 또는 결정장애; 그리고 (9)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또는 자살 생각 또는 자살 시도.
그러나 이렇게 "2주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우울증 진단에 비해 불안증은 6개월 이상이라는 더 긴 기준을 갖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불안장애들은 진단을 위한 특수한 조건들이 더 필요한데, 예를 들어 공포증(phobia)의 진단을 위해서는 "비이성적인" 혹은 "비합리적인"공포 만을 진단기준으로 두어, 합리적이거나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의 공포는 배제하고 있다.
현재는 DSM 5판이 쓰이고 있다. DSM 3판에서 5판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반의들은 불안장애보다 우울증의 진단을 2배 이상 높게 하였다. 또한 제약회사들도 불안증약보다 우울증 약을 타깃으로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2008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10%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질병은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학계에서의 이론의 변화와 함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변화에 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단일한 질병특성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증상군이 섞여있다. 이를 우울증의 이질성(heterogeneity)라고 하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설명하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Horwitz AV. How Did Everyone Get Diagnosed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Perspect Biol Med. 2015 Winter;58(1):105-19. doi: 10.1353/pbm.2015.0005. PMID: 26657685.
Horowitz VA. DSM. A History of psychiatry's bibl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