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로운 약의 투입
운이 좋았달까.
이사한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었다.
후기나 병원 분위기가 괜찮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직원도 원장님도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2년 만에 약을 추가했다.
두 번째 진료일인 지난 19일,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나를 맞아준 것은
일어서서 90도 인사를 하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거의 두 시간인 것 같은데..."
"괜찮아요."
정신과 특성상 대기 시간이 긴 것은 꽤 오랜 짬밥으로 익숙한 상황이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근황을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한 후 약 한 개를 추가 처방하기로 했다. 폭세틴 캡슐이라는 녹색 캡슐약인데, 우울증 약이기도 하지만 식욕 조절에 도움을 줘 다이어트 약으로도 쓴다고 했다. 이 약을 추가한 이유는 아무래도 진료 전 설문에서 '체중 감량을 위해 식단 조절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며, 우울증 약이 체중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지 않을까 싶다.
(난 그냥 잘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지만.)
전 병원에서는 기분이나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상 약을 그대로 유지했었는데, 이번에는 이 약 저 약을 추가하고 감량하며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시도를 많이 해 볼 모양이다.
취침 전에 먹을 약이 세 알이 되었다.
2주간 복용한 느낌은,
식욕이 약간 줄어든 건 사실이다. 점심을 먹으면 저녁은 생각이 없고 밤에도 배고프지 않다.
(체중은 줄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애인은 잠이 늘었다고 한다. 잠만 자려고 한단다.
지난 한 주는 그렇긴 했다. 그건 그냥 피로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 말고 기분의 변화는 딱히 없다. 내가 가장 살 만한 건 일이 할 만할 때니까, 가족하고 엮이지 않을 때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가장 살 만하다.
일어나서 졸린 눈으로 화장실에 가서 씻고 화장하고 옷 입고 출근해서 일하는 것.
심장 두근두근. 무사히 퇴근하길 바라며 집까지 와서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현관문을 여는 것.
옷을 갈아입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제습기를 틀고 불을 켜는 것.
유튜브를 보거나, 티브이를 시청하거나, 휴대폰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러다가 책을 읽고 잠에 드는 것.
평범한 하루가 내겐 치료의 효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