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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Aug 24. 2023

<시험관 일지> 나도 너가 보고 싶어 3

아이는 같이 갖는 거 아니야?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임신을 준비하면서 신체적, 감정적으로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이 아닐까? 지금도 생각한다.


승현의 코로나19 감염 사건으로 한 번의 인공수정이 미뤄지고 그다음 달 나는 다시 난자 수를 늘리기 위해 과배란 주사를 맞았다. 중간 검사에서 다행히 난자 수도 크기도 내막 두께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인공수정 시술날 남편하고 같이 와서 정자채취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선별된 정자를 자궁 안에 주입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자채취 후 대기하는 1-2시간(약품 처리 후 건강한 정자만 선별하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승현과 무얼 할지 고민했다. 아침을 먹을까, 혈액순환을 위해 걷는 게 좋다 하니 근처 산책을 할까, 카페를 가서 수다를 떨까...


집으로 돌아와 승현에게 인공수정 시술 날짜를 전했다. 승현은 휴대폰 일정표를 보더니 말했다.


"그날 스케줄이 있는데?"


맙소사… 그래도 스케줄이 있건 말건 이건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인공수정 시술이란 내 맘대로 미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배란에 맞춰 시술을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놀란 가슴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남편이 아침 일찍 정자채취를 하고 2시간 뒤 내가 방문해 시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또다시 내 난자들을 허투루 잃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승현에게 말하니 싱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건 나뿐이었나.


그렇게 시술 날이 다가왔다. 승현은 아침 일찍 나갔고 나도 그 무렵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과배란 주사를 2주 정도 맞으니 몸이 잔뜩 붇고 배가 딴딴하게 부풀어 올랐다. 불편한 몸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상쾌할 리 없었다. 거울을 보며 혼자 읊조렸다.


"괜찮아. 정윤아. 과정일 뿐이야. “


인공수정 시술은 정말 간단히 끝났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도 두려웠다. 꼭 모든 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움직이는 건 얼마나 움직여도 될까, 먹으면 안 되는 무엇이 있을까, 행동 하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임신에 도움 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난임 카페에 가입했다. 처음 들어가 보는 세상. 난임의 이유는 다양했다. 남편들의 문제도 많았지만 아이를 바라는 예비 엄마들은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영양제를 잘 챙겨 먹었더라면,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더라면, 좀 더 일찍 아이를  가졌더라면... 그 글들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따르는 후회들과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뒤돌아 보면 당시 난 우울증 상태였다. 어디가 고장 난 게 아닌가 싶게 매일 수시로 울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슬펐다. 승현이 같이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는데 승현이 스케줄을 나갔을 땐 울고 또 울었다. 이러지 말아야지 싶어 평소 잘 보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몰아 보았다. 모든 것이 애처로워 보여 또 울었다. 호르몬 주사와 약을 먹었기 때문에 그탓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실제로 호르몬제가 우울함과 슬픔을 가져다주는지는 모르겠다. 절실했고 답답했고 혹독하게 외로웠다.


승현은 이런 날 안타깝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평소대로 살면 되는데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를 보며 그 나름대로 답답했을 것이다. 승현은 그런 나를 걱정하며 데이트를 하러 나가자고 했지만 난 그럴 때마다 화가 났다. 혹시 괜히 나갔다가 될 것도 안 되면 어쩐단 말인가. 조심하는 건 나뿐이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난 이 과정을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기에 필사적이었고 그 마음을 몰라주는 그가 미웠다.


그때 난 승현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종일 누워 같이 눈물이라도 흘려주길 바랐던 걸까.


그 무렵 승현은 연극 준비로 한창 바쁠 때였다. 연극 연습이 끝나고 배우들과 한잔씩 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나는 매일 침대에 누워 승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매번 버림받는 기분에 휩싸였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연극팀과 MT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때의 난 흔쾌히 보내주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빠질 핑계야 수십 개도 대며 빠질 수 있는데 그는 본인이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술을 한잔 마시고 오는 것도 MT를 가는 것도 연극 팀워크를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라 했다. 내가 모르는 연극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 지금 당신이 몰라주는 나의  세계는?’


단지 우울한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건 아닐까. 좋을 때나 좋지, 상황이 나쁠 땐 벗어나려는 인간. 물론 승현이 살아온 인생을 보면 그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나만의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합의점을 결국 찾지 못했고 승현은 연극팀 MT를 떠났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시댁으로 향했다.








우리,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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