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쟁자들 사이 나만의 스펙을 쌓는 방법
토요일 오후,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이번 주 에너지는 어려운 숙제를 끝내느라 다 써버렸다. 저녁을 먹자고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어제 해커톤 대회를 나가느라 밤을 새웠다고 연락이 왔다. 얘는 언제 또 이런 대회를 나간 걸까. 나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찬데 주변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애들, 원격으로 파트타임 프로그래밍을 하는 애들, 교수님 랩에서 연구하는 애들. 나도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정확히 뭘 해야 하는 걸까?
이번 글의 주제는 스펙 쌓기. 단순히 이력서에 넣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조금 더 포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1. 학교 수업: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질을 결정하는 기본기와 소통능력을 얻을 수 있다.
2. 경력 쌓기: 프로그래밍 실력을 쌓고 이력서에 보일 내용들을 얻을 수 있다.
3. 도메인 지식 키우기: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내 커리어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커리어를 원한다면, 한국 사회가 강조하는 것만큼의 학점이 중요하진 않다. 수업에 잘 안 나오고 학점이 보통인 학생들(4점 만점에 3점 초반의 GPA)도 취업을 잘한 경우가 꽤 있고, 정말 성실하고 학점 높은 학생들도 취업이 잘 안 풀리는 경우를 꽤 봤다. 미국 테크씬을 이끄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가 모두 대학교를 중퇴한 점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 수업에 집중함으로써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프로그램을 빨리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런 재주가 전부는 아니다.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론적이고 시스템적인 면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효율적인 알고리즘, 효율적인 시스템 관리, 버그들로 부터 안전한 구조등등이 있다. 학교가 지닌 큰 장점은 이 기본기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을 통해서 알고리즘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시스템을 이해함으로써 좀 더 최적화되고 안전한 프로그래밍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실질적인 토픽(예를 들어 클라우드, 모바일 어플, 웹 어플리케이션)을 다루는 수업들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는 인턴십이나 인터넷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친구의 권유로 수업 조교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도움되는 경험이었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모든 것에는 다양한 접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문제도 여러 방식으로 풀 수 있고, 같은 프로그램도 여러 방법으로 짤 수 있다. 조교를 하면 타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혼자 숙제를 할 때는 불필요하지만 회사에 들어간다면 매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소통이다.
회사는 프로그램을 잘 아는 사람보다 잘 만드는 사람을 찾는다. 아무리 학교 성적이 좋고 아는 것이 많아도, 그것들을 필드에 적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리크루터에게 확신을 줄 수 없다. 경력이 될 만한 굵직한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방법은 해커톤 대회를 참가하는 것이다. 해커톤이란 소규모 팀 안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한 가지 프로그램을 만드는 대회이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해커톤 대회는 사실상 리크루팅 이벤트 (회사들이 대학생들한테 자기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 반대로 학생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회사들한테 눈도장을 받을 수 있다. 설령 대회 때 주목을 못 받았다고 해도 나중에 참가 내용을 자기 이력서에 쓰면 된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일 년에 두 번 해커톤이 있는데, 해당 학교 학생만 신청할 수 있다. MIT나 유펜 같은 학교는 규모가 큰 해커톤을 주최하고 타 학교 학생들도 신청 접수를 받는다. 이런 큰 대회를 참가하면 더 많은 회사를 만나고 상을 받는다면 더 좋은 경력이 될 수 있다. 미국 각종에서 벌어지는 해커톤은 mlh.io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턴십은 필드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펼칠 수 있는지, 회사 조직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턴십을 경력 첫 번째로 기술한다. 구하기 어려운 만큼 제일 탄탄한 스펙이 될 수 있고, 유명한 회사라면 리크루터의 이목을 단번에 끌 수 있다.
가장 힘든 건 첫 번째 인턴십을 찾는 것이다. 나 역시 첫 인턴십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미국에서 찾고 싶었지만 실패했고, 한국에서 로켓펀치를 통해서 얻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정말 모르던 시절이라 퀄리티가 좋진 못했다. 하지만 취업시즌 때 꽤 많은 미국 사람들이 이 어플 취지에 관심을 보였다. 이것을 발판으로 다음 해 나름 이름값이 있는 인턴십 두 개를 구할 수 있었다.
인턴십은 그냥 부딪혀 봐야 한다. 한 번에 화려한 인턴십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경험을 쌓아 나가자. 아무리 작은 조직이어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 낸다면 그 성과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꼭 나타날 것이다.
테크 산업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 지향적인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기에 프로그래머라면 테크에 관한 "트렌디"한 정보를 꾸준히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지식을 얻어내는 것. 이 습관이 몸에 베인 사람이 바로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인재이다.
내가 주로 정보를 얻는 경로는 네 가지가 있다.
1. 동영상 / 팟캐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애플 팟캐스트
2. 블로그: 미디엄 (영어 블로그), 브런치 (한국 블로그)
3. 뉴스레터: tldr (테크 뉴스레터), 디독 (UI/UX 디자인 뉴스레터)
4. 모임 / 행사: 이벤터스 (한국 모임만), meetup (전 세계)
다음은 취업과 테크 산업에 관해서 특별히 도움이 됐던 콘텐츠 몇 개를 뽑았다.
•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브런치 매거진):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말해주는 회사 이야기. 실리콘 밸리가 어떤 가치관과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직원으로서는 어떤 고민을 맞닥뜨리는지 알 수 있다. 또 취준생 입장에서 테크 회사가 원하는 유형의 인재를 알 수 있다.
• 태용 <리얼밸리> (유튜브, 페이스북): 한 직원을 인터뷰해서 그 사람이 일하는 회사나 그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 회사나 한국 스타트업에 대해서 다룬다. 특별히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에어비앤비 유호현 씨와 토스 이승건 씨 이야기.
• TLDR (뉴스레터): 현재 테크씬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뉴스레터.
• 듣똑라 (애플 팟캐스트): 기자 출신 3명이 진행하는 토크쇼. 요즘 뜨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심층적으로 다루는데 가끔 테크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한다.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디지털 유료 구독 서비스,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리테일 서비스, 데이터 저널리즘.
• 슈카월드 (유튜브):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가끔 테크에 관련된 주제를 하는데,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테크 회사의 경영/경제적인 요소들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도움됐던 에피소드는 애플 tv/미디어 전쟁, 우버/자율주행, 그리고 쿠팡/손정희 이야기.
스펙을 어느 정도 쌓았다면 이제 레주메를 만들 차례이다. 다음 편에서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