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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주 이주 준비 [집] 최종편

Over the rainbow

by 킴 소여 Feb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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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풀리지 않던 여러 문제들이

갑자기 동시에 전부 해결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어깨에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포기와는 조금 다르게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내려놓음의 순간이었을 경우가 많다.


문제의 바로 앞에서 해결해 보려 아둥바둥거릴 수록

중압감은 내 시야를 더욱 좁게 가려버리고

더욱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몸에 힘을 빼고, 몇 걸음 뒤로 떨어져

더 넓게, 그리고 덤덤하게 바라보아라.


출구는 바로 옆에 있어왔을 것이다.




새벽 6시 아침 일찍.

혼자 눈이 떠진다.

아직 여명도 오지 않은 암흑 같은 겨울 새벽.

세상의 소리에 맞춰 고요오히..

내게서 멀리 떨어져 나를 내려다본다.


 .


5일간 오로지 집 찾기에만 매진한 날들.

그리고 샅샅이 찾아도 딱! 맞아떨어지는 집이 하나도 없다는 좌절감.

이제 제주에서의 남은 시간도 내게 남은 에너지도 별로 없다.


'내가 원했던 게 뭘까?'

무얼 위해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하고 있나.

단순한 로망?

퇴사하고 마땅히 대안도 없는데, 그냥 놀긴 민망하고

제주도에 산다고 하면 괜히 멋져 보이나??


제주는 내게 '꿈꾸던 현실'이었다.

도시와 달리 아름다운 자연이 언제나 옆에 있고

그 속에서 나 자신으로 더 깊게 빠져들 수 있는

사람 속에서의 나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리고 우주 속에서의 나를 고민할 수 있는

그리고

근본적인 나를 깨닫고

남들이 알려주는 행복이 아닌

내가 아는 참된 행복을 실천하고 싶었다.


.


허나,

그렇다고 현실을 배제한 철학이란 몽상일 뿐이다.

두 아이의 부모로서

금전적인 문제를 배제할 순 없기에

'공부방'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였고,

좋은 위치도 찾았건만!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집들

(한라산뷰 해안동 집, 프라이빗한 애월 집)은

하필 다 공부방에서 너무 멀리 있다.


돈이냐, 집이냐..?

돈 벌려고 제주 온 건 아니지만

돈 없이 살 순 없고,

그렇다고 한라산을 사이에 둔 편도 40분 출퇴근은

시간이 길어 힘든 점은 감내한다 치더라도

기상변화가 큰 제주도에서는 산간도로가 아예 차단될 수 있어 너무 큰 무리수이다.


 



사실상 제주도에 현재 나와있는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보았고

그 결과,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이제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당장 며칠사이동안 집을 찾는 건 너무 욕심이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제주를 떠날 '짐을 싸야 한다'는 걸..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이상하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튼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음악소리와 함께

꺼진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듯

제주의 자연이 다시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며칠간 집 찾기에만 급급해 보지 않았던 자연들이

오랜만에 만난 애인처럼.

순간 영문모를 눈물이 울컥 맺힌다.

상실했던 전 연인과의 기억이 한순간에 파도처럼 돌아오듯

내 모든 이유, 동기가 다시 떠오른다.

'나.. 이 자연을 사랑했지!'

때마침 노래가 끝나고 무지개를 소재로 한 음악을 소개해 보았다는 MC의 멘트와 함께 묻는다.

"오늘 당신의 무지개는 무엇인가요?"


음악의 끝과 동시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집주인분의 차!

순간 믿지 않는 운명의 힘을 빌어 곧장 달려갔다.

나의 무지개에게..!






그날 초저녁.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에 아이들에게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주시겠다는 말이었다.


아까 아침에 라디오 음악에 순간 취해 눈물을 글썽이며

'이 집을 스테이 말고 연세로 내놓으실 생각은 없으시냐'라고

물었던, 거의 사정했던(;;) 내가 떠오른다.


집들을 정말 많이 보러 다녔지만,

어느 하나 확신이 드는 곳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집을 비교하는 기준이 계속 이 집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집 같은 집을 아무리 찾아보았자

이 집 같은 곳은 이 집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식의

거의 사랑고백 비슷한 횡설수설한 말들을 늘어놓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던 주인분은

"가족들과 상의해 볼게요~"라며

그녀의 도예 작업실에서 울먹이던 내게 따뜻한 차 한잔을 내려주며 다독여 준지

몇 시간만의 전화였다.


.


벌써 상의를 다 해보신 걸까?

 그냥 고기만 먹자는 건가??

긴장되는 마음으로 마당에 여기저기 뿌려진 나뭇가지들을 화로로 주어 모으며

불을 붙이는 주인분을 거들고, 아이들은 불만 봐도 신이 나서 까르르 뛰어다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꿈같은 집에 살게 해준다고 한다!

그것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ㅠㅠ


이런 인연을 두고 '귀인'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겠는가.

진정으로 나는 여태 이렇게 영혼이 맑으면서 내면이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진심으로 돈 많은 부자나, 명예 높은 사람보다 이런 사람에게 깊이 고개 숙여진다.

계산적인 금전적 가치보다 무엇이 더욱 중요한지를 확실히 세우고 있는

인정을 베풀면서도 아무런 바라는 것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호의에 너무 낯설면서도 신뢰가 가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불신하는 편인 나조차 활짝 열게 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풀렸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등잔 밑에서 열쇠를 찾았다!


제주의 자연에 대한 내 진심 어린 사랑을 깨달았고,

이별하지 않아도 됨에 이처럼 행복한 순간이!


이런 순간 하찮은 인간이란 존재는

운명을 떠올리게 된다.

'온 우주가 나를 이끄는구나, 제주로!'


정말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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