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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Sep 28. 2024

환상의 결정체 '우도'

조금은 제주가 흔해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고작 3개월 제주살이 하면서 한 달이 지나니 매일매일을 관광모드로 여행하기엔 체력과 열정이 방전되어 가던 즈음,  지난주 11명의 대가족이 방문했다.

수가 많은 만큼 각자의 수요를 반영해서 짠 코스는 효율적인 동선과 개인의 기호와 모두의 공익을 다~~ 고려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다수의 최대 만족을 달성한 듯하였다. 마지막에 떠나는 이들은 모두 멋진 여행이었다며 아쉬워하며 되돌아갔다. 떠나면서 각자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못한 WISH LIST들을 잔뜩 남기고 갔다. 


왁지지껄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나서 일까.

제주는 더 고요하고 차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달라진 건

이곳의 '잊고 있던 소중함'이었다.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이곳에 와있다는 걸.

조금은 내가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사실 우리도 그토록 열망해 온 곳이었다는 걸.


여행 가이드는 우리에게도 리프레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0월 말 현재의 날씨는 미치도록 좋다. 20도씨 중반에 바람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는 집 안에 있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지는 날씨이다. 마음도 날씨도 즐기기에 완벽한 지금.

'이제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제주살이를 더 열심히 관광해 주마!'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지난주 대가족 여행에서 남편과 우리 아이들만 어린이집 등원으로 가지 못한 '우도'를 남편과 다시 가기로 한다.




지난 편인 [29화. 제주살이 마지막 손님 초대!]에서 등장하듯이, 처음 와본 우도는 제주도의 환상적인 매력들만 추출해서 압축시켜 놓은 '환상의 결정체'같았다. 우도에서 기대 훨씬 이상의 감명을 받아 불과 며칠 전에 왔음에도 남편과 빨리 다시 오고 싶었다. 단둘이 이 환상적이었던 장소를 다시 온다는 것은 장소가 설레는 것인지 같이 오는 상대가 설레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분간 가기 어려워, 연애시절 데이트를 하는 듯 설렘 가득한 출발을 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온건 째금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기 전에 온전히 이 섬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어 아이들과는 다음을 기약한다.


우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전기차를 대여한다. 직원이 작동방법 설명을 하는데 나는 한번 운전해보기도 하였고 설령 처음이라 하여도 자세히 새겨듣지 않는 편인 P인 나와 달리, 시험 칠 듯이 세상 열심히 듣는 J 남편. 인간의 DNA는 종의 다양성이 멸종의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종족 번식을 위해 반대가 끌리는 것이 본능이라 하였던가. DNA의 조종에 의해서인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상대가 채워준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되어야겠지만..

자 이제 전기차도 받았겠다 환상의 섬 우도를 즐겨볼까나~~(부릉부릉)

열심히 설명 듣는 INFJ 간디남편
부룽부룽 ~~~~


소형 전기차의 얄팍한 승차감은 우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덜커덩덜커덩 쿵덕쿵 달그르르륵 우당탕~!

사방으로 뚫린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들은 오히려 시야에 막히는 게 없는 오토바이보다 프레임 안에서 바라보는 설레임이 있다. 눈부신 바다, 정겨운 마을길, 낮게 풍성한 초록밭 길 그리고 진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숲 사이 도로들. 활짝 열어둔 창을 통해 온몸으로 맞는 바람은 어지러운 듯 가슴을 더 가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하고수동'이다. 지난주 가족들과 왔을 때 너무 예뻐 보여 눈으로 찜해둔 카페가 있었서 이곳부터 와보았다. 카페에 들어서자 밖에서 볼 때보다 더욱 놀라운 뷰가 펼쳐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

부부가 닮듯 누가 누굴 닮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인 듯 분리되 있다.

가슴이 요동치는 푸르른 생명력의 대결을 보고 있으면 태양에 반짝이는 윤슬의 재잘거림이 둘의 아이같기도 하다.


자연의 예술작품에 빠져 있을 즈음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땅콩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우도의 명물인 땅콩은 우도 내 어떤 가게를 들어가도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흔한 형태가 '땅콩 아이스크림'인데, 지난주 가족들과 왔을 때 여러 곳에서 땅콩아이스크림을 먹었지만 다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달고 강한 땅콩 소스를 잔뜩 뿌려 하나를 다 먹기가 어려운 맛 들이었다. 그래도 남편과는 처음인데 한 번은 먹어야지 싶어 시킨 땅콩 아이스크림은 다른 곳에서 먹은 것들과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인위적인 땅콩소스가 아니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은은하게 생땅콩을 갈아 넣고 그 위에 볶은 땅콩을 통으로 토핑 하는데, 땅콩 본연의 맛이 살아나 전혀 밋밋하지 않고 너무 조화로웠다.


 "자기야! 내가 땅콩아이스크림 여러 군데 먹어봤는데,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이건 무조건 1인 1 아이스크림 해야겠다, 그지??"


하나 더 시키자는 내 말에


 "음.. 우리 이제 도착해서 첫 장소야^^ 앞으로도 맛있는 건 계속 나올 거고~ 시작부터 무리할 필요 있을까??^^+"


호들갑 말고 진정하라는 남편; 내가 시작부터 너무 과한가 싶어 일단 진정하는데,, 그 후에도 그런 아이스크림은 만날 수 없었다. 너 같은 아이스크림은 너밖에 없었어..ㅠㅜ


인생 땅콩 아이스크림




카페에서 나와 전기차를 달달달달 몰고 두 번째 목적지 '검멀레 해변'으로 간다.

10월 말의 따스한 날씨와 관광지라는 자신감이 과감히 가디건을 벗게 만든다. 나시 패션으로   오늘의 컨셉인 관광객 마인드에 더욱 과몰입하는 나. '마음'과 '의상'과 '날씨'와 '장소'가 만나 날아다닐 것 같은 이 해방감. 소품샵만 보면 그냥 지나치질 않고, 상품 하나하나 세세히 들여다보며 관광객 모드 200%인 나는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기어이 남편 팔찌 하나와 내 반지 두 개를 고르고 인생네컷 부스에서 사진까지 찍는다.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소 안 하던 많은 행동들을 하게 만든다.

해방감이 과해 날아가기 직전
소품샵은 못참지


그리고 남편의 강력 제안으로 타게 되는 '검멀레 해안 보트'. 역시나 상업적인 걸 못 참는 나는 뭐 이런 관광지 돈벌이 수단에 돈을 써야 하냐며 투덜투덜 대며 타는데,, 글을 쓰면서 느끼지만 난 참 편견쟁이인 것 같다. 잠시 후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줄도 모르고..

투덜 터벅 터덜

그저 관광용 흔한 액티비티로 스릴을 위해 고속으로 급경사를 기울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액션은 예상한 플레이였다. 그리고 동굴 안 속까지 들어가 신비로운 동굴 속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섬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에는 조오금 흥미로움을 느끼며 순회를 마치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려는데...!!!!!!

그들이 나타났다.


....!


돌고래를 제주도에서 아주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강아지 쓰다듬듯 손 내밀면 닿을 만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고, 예상하지 못했고, 작정하고 돌고레 체험 배를 타도 쉽지 않았을 경험이다. 어쩌다 만나게 된 돌고레 떼들은 사람은 신경도 쓰지도 않고 유유히 자신들의 속도대로 가족 나들이 하듯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 진귀한 생명과 지금 그냥 이렇게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그들은 모르겠지.

그래.. 인간은 그냥 너희와 같은 지구의 한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인걸..

우린 그냥 함께 지구를 살고 있는 이웃이고.'


평소에 수족관에 갇혀있는 돌고래만 보다가 야생에서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었다. 돌고래보다 더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다 못해 돌고래와 동화된 나는 거의 그들과 대화할 지경이다.

돌고레 비명으로 대화중;;




그렇게 돌고래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배에서 내리자 돌고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 아이들 하원시간이 다가온다. 빨리 함께 다시 와야지!

이제 마지막을 장식하러 우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비치로 알려진 '서빈백사'로 향한다.


서빈백사는 투명한 에메랄드 바닷물과 하얀 모래만 해도 눈이 부신 이국적 풍경에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세계에서도 3군데 정도밖에 없는 희귀한 홍조단괴로 해변 전체가 이루어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더 가치가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제주도.

그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도.

그리고 그 우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빈백사.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유난히 명확한 그라데이션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이얀 모래.


아름다움을 말하기가 입이 아픈 미의 향연들 속에서

날씨까지 도와주는 맑고 따사로운 가을 공기를 부비며

2023년 10월의 마지막날이 지나고 있다.


모든 터전을 갑자기 다 버리고 덜컥 와버린 제주도.

그런 제주는 알수록 후회는 커녕 더욱 사랑하게 되고 있다.

아.. 몰랐으면 좋았을

이 매력을, 그리고 내 마음을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


그렇게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서빈백사






<제주행 야간비행기>

THE END.




.... 시즌2에서 만나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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