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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Sep 07. 2024

밀당의 신 '토성'

인간은 기본적으로 밤하늘에 유일한 빛이자 닿지 않는 별들을 동경한다. 우주라는 끝없이 넓은 미지의 세계에서 지구와 우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사실 마음으론 접점이란 없는 너무도 먼 세계 같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우주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진 건 칼세이 건의 [코스모스]를 읽고부터다. 그렇게 멀고 차갑고 어렵게 느끼던 '천문학'을 '문학'으로 장르 전환시킨 아름답고 포근한 그의 필력!! 너무 어렵지만 매력적인 이성같이 여러번 탐독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제주행 야간비행기를 타고 온 첫날밤 바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별들'이었다. 도시의 불빛들이 걷혀진 제주의 밤은 더 많은 별들을 눈앞에 데려와 우주와 가까워진 듯하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여전히 별에 대해 부족한 내 지식은 가까워지고 있는 친구에게 부끄럽고 답답하게 만들었고, 저 많은 별들이 아름답고도 궁금하였다.


어느 날 제주 여행지를 검색하다 알게 된 '서귀포 천문과학관'. 시기에 따라 잘 보이는 별이 달라 매달 관측대상이 바뀌는데, 마침 10월은 '토성'이었다. 토성! 태양계 행성 중 가장 아름다운 고리를 가진 행성. 마음만이던 우주 사랑을 바로 실행하게 만들만한 별이다.


허나 시간의 신(토성의 영어 명칭인 새턴/크노소스 신의 별칭)의 밀당 스킬은 가히.. 경이로웠다.


그와의 첫 인연은 2주 전으로 돌아간다. [22화. 제주살이 중 손님맞이하는 흔한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대구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와 아들이 놀러 오기로 하여, 상기된 나는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아이들 교육'이라는 명분 하에 너무 해보고 싶었던 천체관측을 해보자고 한다. 그렇게 낮에 알찬 관광으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밤 9시 가로등도 하나 없는 산중턱의 암흑을 뚫고 1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갔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간단히 바람맞았다. 기상악화로 관측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예약 자체가 어려워서 예약만 성공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에게 엄청난 굴욕을 주었다..


근데

'그럴수록 더 갖고 싶다!!

토성 너란 녀석~..,...,!!!

보고 말겠어 ㅡㅡ +++++'



● 서귀포 천문과학관 예약 TIP

7일 전 매일 오후 6시 예약이 열린다.
가장 인기 있는 야간관측인 오후 8시, 9시 하루 2 타임이며 타임별 수용인원은 38명이다.
관측 시간이 야간이다 보니 평일보다 주말 경쟁이 매우 치열해 대게 오픈런으로 예약해야만 볼 수 있다.

예약에 성공한다고 기뻐하긴 이르다. 지난번의 나처럼 막상 힘들게 현장에 도착해도 기상 문제로 관측이 불가한 경우가 빈번하다.(거의 반반확률ㅎㅎㅎㅎ) 그런 경우는 천체투영실의 4D 관람과 망원경 몸체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온다 ^^;


그 후 날씨가 흐리면 관측이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어 일기예보를 보며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오늘! 10월의 마지막주! 월마다 관측 가능한 대상이 바뀌어 토성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예약가능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날씨는...

운명의 장난처럼 오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 갑자기 오후 5시쯤부터 구름들이 떼 지어 출근하기 시작한다. ㅠㅜㅜ 아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취소했겠지만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못 먹어도 Go 할 수밖에.. 또 한 번 토성에게 바람맞을 것을 각오해 본다.





관측 예약은 9시. 아이들 하원은 4시. 이동시간 1시간을 고려해도 4시간이라는 텀이 비는데, 집에 왔다가 가기에도 어린이집에서 왕복 40분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고민 끝에 오랜만에 서쪽까지 먼 거리를 간 김에 가볼 만한 곳이 없을지 알아보는데,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곳이 '신화월드'밖에 없다. 그래서 자투리 시간용으로 큰 기대 없이 가본다.


근데 웬걸? 어트랙들이 종류가 엄청 많은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테마도 있고 무서운건 아주 제대로 무섭게 재밌었다. 또한 야간 타임의 조명 가득한 놀이공원은 어른도 설레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가족 모두가 신이 나 여기저기 지칠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다가 폐장 시간을 앞두고 급 배가 고프다. 신화파크 부지 안에 놀이공원, 워터파크, 아울렛, 호텔 그리고 식당들 까지 큰 규모로 다양하게 형성되 있어 먹을거리가 많아 고민하던 끝에 어른 아이 모두 속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식집을 택한다. 김치찜이 1인에 2만 원이 넘어 관광지라 너무 비싸다 싶어 고민하다 아이들 반찬이 될만한 고등어 구이가 포함되 있다는 말에 시켜본다. 다행히 관광지의 흔한 영혼 없는 식당은 아니었다. 두툼하고 푹신한 흑돼지에 뜨끈하고 화끈한 김치찜이 올라가 엄마 아빠는 파워를 재충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토성을 만나러 갑니다~~~~~~~~!!!!!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또다시 만난 서귀포 천문과학관! 힘들게 예약해 힘들게 온 만큼 오늘은 부디 토성을 볼 수 있기를...!!! 허탕은 쳤지만 한번 와봤던 경험으로 천문대가 고지대 산간지역에 위치하고 밤이고, 관측은 야외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추운지 경험해 보아서 오늘은 겉옷을 아주 단단히 챙겨 왔다.


관측 전 대기실에 비치된 우주 관련 도서관 책을 보며 아이들의 기대심을 더 고조시키고, 전시물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관측실 문이 열린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망원경 관측 시간!!

'아.. 제발 날씨야 ㅠㅜㅜㅜ 도와다오...!!!'


천문대 직원 曰

 "지금부터 한 줄로 서서 한 명씩 망원경 관측을 해볼 건데요.

이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관측이 가능했는데,,, 갑자기 조금 전부터 구름이 껴서 관측이 안되고 있습니다.

오늘 관측은 어려우실 것 같고.. 망원경만 차례로 보고 가실게요~"




아... 또.... 인가.. 진짜 눈물 나오려 한다.. ㅠㅜㅜㅜㅜㅜㅜ

그렇게 또 한 번 데자뷰같이 망원경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망원경 보러 줄을 서서 직원의 안내대로 차례차례 들어간다. 이번엔 그래도 저번과 다르게 아예 처음부터 안보인 게 아니여서인지, 지난번엔 닫혀있던 천장 돔도 열려있고 망원경에 최소한 눈은 대보게 해 준다.

출처: 서귀포 천문과학문화관 공식홈페이지

 38명의 긴 인원들 중 우리 차례가 중간쯤이었는데 앞에 관측하는 사람들마다 "아.." "후..."같은 짧은 탄식을 내쉬며 공허한 눈짓을 해본다.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마침내 힘들게 도착한 공주의 성에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공주의 주검을 대하듯 애통한 심정으로 깜깜한 화면을 보러 눈을 대어보는데...

'하..... 역시나 안보이.. 으음으음~~~~~~~~???????????!!!!!!!!!!!'

시커먼 것만 눈에 들어오다가 빛이 문득문득 보인다!!!!!

" 젓... 저저저!!! 뭐 보이는 거 같으데요?????!!!!!"

내가 너무 놀라 소리치자


직원도 같이 놀라

"네??!!! 정말요??? 제가 한번 봐볼게요~!

  !!!!!!!!!

어!!! 보인다!!! 구름이 이제 지나갔나 봐요!! 보입니다 여러분~~~~~~~~~~!!!"

OH~ YEAH~~~~!!!!

사람들 모두 신난 환호성 속에 천체 관측을 위한 암흑 속에서도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별빛에 반짝인다. 아까 앞에 못 보고 나간 사람들까지 다시 불러오고 잔뜩 파티 분위기 속 행운의 첫 번째 관측자가 나라는 거~


나는 다시 제대로 보러 망원경에 눈을 대는데 구름이 완전히 지나가 아까보다 더 잘 보인다!

"오오오오오오~~~~~!!!! 보여보여보여~~~~~~~~`!!!!아하하하핡1ㄴㄻㄴㅇ#$@#^"

흥분하여 돌고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도 서로 빨리 보여달라며 난리이고, 남편까지도 같이 흥분해 아이들을 한 명씩 들어 보여주곤 자기도 한참을 들여다본다.


화아아아.......

이 느낌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처음 3초는

'어..? 조금 내가 예상한 책에서 본 그런 디테일한 모습은 아니구나.'

였다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이는 자그마고 소중하게 빛나는 토성. 아이 임신 후 처음 보는 초음파 속 태아를 보는듯 뭉클하다. 태아의 손가락이 처음 보일 때 다섯 개가 가련히 잘도 놓인 게 그렇게나 대견했던, 그런 기적같은 감동 토성의 예쁘게 빠진 고리에서 느낀다. 단순히 고화질의 잘 찍은 인공위성사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있다니...! 토성과 내가 함께 눈을 맞추고 탯줄로 교감하듯 둘만의 비밀을 서로 나눈 것 같이 이상야릇하다. 볼 수만 있다면 한참을 보며 붙잡아 두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내 반응으로 기대감에 가득 차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제야 의식되 그 먼 거리의 토성과의 교류는 찰나처럼 끝이 난다.

좌) 예상한 이미지 / 우) 실제 관측한 이미지 (출처: NASA/ NAVER)

관찰시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그 뭉클함은 너무 강렬했다. 그리고 이는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는지 나온 사람들 모두 상기되어 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던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 하늘에 이별 저 별들을 다 가리키며 "토성토성" 거리고 있다. 찬이는 그 후로 토성 마니아가 되어 뭔가 돌아가는 물체만 보이면 죄다 토성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다.

남편이 토성방향이라며 핸드폰을 들이대 토성이라며 갤럭시S12로 찍은 사진.ㅎㅎㅎㅎ 고리가 보인다며 토성이라고 하는데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천체관측을 하고 1시간을 걸려 집에 돌아와 모두들 피곤한 몸임에도 마음은 이상하게 지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모두가 토성의 여운에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토성책을 꺼내 자세히 펼쳐보고 남편과 나는 토성주라며 괜히 맥주에 토성 고리라며 레몬을 꽂아 토성 그림을 아이돌 사진 붙여놓듯이 벽에 붙여놓고 토성을 향해 건배해 본다.

"토성을 위하여~~~! 캬아~~"

거대한 행성이 주는 기운을 렌즈 너머로 받아 피곤 나른하지만 힘이 넘쳐나는 강렬한 밤이 지난다.. 

일명 '토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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