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 소여 Aug 31. 2024

브런치 '작가신청' 도전!

제주도 세 달 살이 계획을 하면서 정한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1. 서핑
2. 바다 조깅
3. 외부에 글 쓰기


사표를 갈기고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한 달 하고도 열흘이 넘어가는 시점에 오자 번뜩 깨닫는다.

 '아..! 나 벌써 제주살이 기간에 반이 지났구나!'

그리고 이 형체 없는 불안감은 언어화됨으로 더 구체화된다.

오전에 가까운 사촌언니와의 통화에서 언니는 언니로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걱정들을 질문한다.

 "제주살이 너무 재밌지? 부럽다~

근데, 끝나고는 무슨 계획이야? 너나 매제는 어떤 일 할지 알아보고 있어?"

"......"

뭐지.. 엄마가 시켰나;;


통화를 끊고 더 생각이 많아진다. 안 그래도 슬슬 일과 일 사이의 휴가가 아닌 '놀기만 하는 생활'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한 달까진 그저 좋기만 하다가 조금씩 아주 쪼금씩 권태감이 소리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너무 좋지만 단짠단짠이 아닌 것만 계속 먹으면 물리게 되는 건 어쩔 없다. 쉼이 흔해짐으로 인한 감각의 무뎌짐. 애매복잡스리한 감정들을 나도 느끼고 있는 터였다.


거기다 뒤가 정해지지 않은 막연함. 지금은 퇴직금도 저번주에 들어왔겠다 풍족하지만, 인간 태초 때부터 새겨진 미래에 대비하는 본능적 불안감. 소로우 형님은 인간의 불안은 불치병이랬지.

이런 기타 등등의 불안감이 아직 강하진 않았지만 스믈스믈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불안감은 실행의 원동력이 되어 제주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해변 조깅'을 오늘 바로 무작정 시작하게 된다.


'그래, 잘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일단 시작하자!'


시작은 불안감에서였을지 언정, 막상 첫걸음을 떼려고 하니 너무 설렌다. 아! 가보지 않은 길이란 얼마나 설레는가!

무슨 종인진 몰라도 거대한 행렬의 초록빛과 흙빛의 대조. 거기에 강조되는 레드의 올레 리본 색 예술.
바다, 돌담 그리고 풀들. / 이 와중에 에어팟 케이스만 가져온 대다난 나.


표선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집 앞 '올레길 4코스'를 뛰어본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설레게 하는 표선의 투명한 하늘 물감을 시작으로 걷다, 달리다를 반복한다.


인간은 자연을 가까이해야만 한다. 자신도 자연이란 걸 잊지 않게.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도 인간의 걱정 따윈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 앞에서 아주 가벼워진다.

제주는 그런 곳이다. 가끔 힘이 들어 고개 숙일지 언정, 무심코 얼굴을 들면 눈앞의 자연이 자꾸 행복으로 데려다 놓는다.






내친김에 버킷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숙원 사업이던 '외부에 글 쓰기'까지 행동에 옮길 용기를 얻게 된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등 여러 플랫폼들 중 어디에 하면 좋을지 심사숙고한 끝에 '브런치'에 글쓰기로 결정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나다운 글쓰기를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작가'라는 명칭과 작가 선정이 돼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진입장벽이 오히려 더욱 설레고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용한 카페를 하나 잡아 각 잡고 작가신청용 글을 작성해 본다. 일기장에 써둔 일기들을 바탕으로 [1화. 아이가 둘이지만, 퇴사하겠습니다.][2화. 인생을 디저트처럼] 2편을 빠르게 써내려 간다.

그리고 대기업을 동반퇴사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살이를 하는 연재 계획을 열심히 써 내려가본다. 몇 시간을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다 쓰곤 '신청하기'를 누르고 나온다.


아.. 근데 이 기분 뭐지?

왜.. 비참하지?


나에게 글쓰기란 '구원'이었다.

어려웠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쓰기 시작해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써온 일기장.

혼자 보는 글이란 어떤 부담도 없이 뭐든 들어주는 소중한 대나무 숲이었는데,

작가신청을 올리고 판정을 기다리게 되니 나의 소중한 대나무숲이 갑자기 시장 가판대에 올려진 대나무 공예품이 된 것만 같았다. 팔리길 기다리며 문득 스스로 볼품없어 보이는 것도 같고 싸구려품이라는 판정을 받을 것만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3년 전쯤 육아휴직 중에 브런치 작가신청을 한번 하였다가 떨어졌던 경험 때문인지 설레임보단 불안함을 가지고 아이들 하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 길. 해안길로 운전 중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햇볕이 틈을 열고 비집듯 터져 내려온다. 그냥 지나칠 법도 한 여느 하늘이었지만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굳이 가던 차를 갓길에 세우고 담기지 않을 걸 알면서 카메라를 켜본다.

 

꽉 막힌 구름을 가르고 신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좋은 결과가 오리라.  






다음날 이른 아침. 괜한 불안감에 작가 신청글을 하나 더 수정해 제출해 보려고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을 연다.

그런데 그때 "엄뫄~..???"

율이가 따라 깬다. 새벽 공기보다 더 맑고 청량한 저 어투는 '이제 잠을 다 자고 일어난다'는 시그널로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조용히 포기한다.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준비하며 아이들을 일찍 등원시킨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을 켜 세 번째 글을 쓰고 있는데..!

뾰롱-! 알림이 뜬다.


어제 본 하늘에서 신이 내려주신 소중한 기회인 것 같다. 백수 생활에 조금의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던 인간에게 내리는 작은 성공은 큰 활력소이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였다.

이전 26화 3代가 함께하는 제주 동쪽 여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