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시대의 명상
역사를 봤다. 기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16세기에 스페인은 최대 강국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네덜란드에 밀려났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세우며 해양무역을 장악했고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네덜란드는 광기의 튤립버블로 침몰하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시대' 가 되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미국이 세계 경제 패권을 쥐면서 대영제국도 막을 내렸다. 영국은 아직도 1인자의 꿈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브렉시트(EU 탈퇴) 이행을 시작했고 우습게 삐걱거리는 나라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을 맞이했다.
코로나 19는 사회, 경제, 일상 모든 것을 중단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익숙한 일상에서 떠났던 지난 몇 달은 입 떡 벌어지는 변화를 경험하게도 했다. 사실 일상은 무덤 같은 것이다. 코로나 19는 이 견고한 일상의 벽을 무너뜨렸다. 벽이 무너지자 안보이던 것이 보였다.
세계 최고의 문명과 지성을 자랑하던 유럽 선진국의 오만, 동양인에게 모멸감을 주던 시선, 수백 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굳건한 우월감은 분명 흔들렸다. 그들은 민낯을 드러내며 우왕좌왕했다. 미국은 총체적 난국이고, 모 언론인의 평에 의하면 일본은 '총체적 엉망'이었다. 코로나 19라는 동등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세계를 다시금 평가할 수 있었다. 인식의 지층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판이 달라지면서 새롭게 드러나는 한국은 우리가 익히 알던 한국이 아니었다. 우리도 우리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고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학자들은 "서구 경제모델은 수명을 다했으며 한국이 따라갈 모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래학자 짐 데이토, tbs 뉴스, 2020.5.5) 새로운 시대가 분명 열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 19는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켰다. 덕분에 가능성으로만 얘기되던 많은 것들을 앞당겨 경험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을 실제로 경험했다. 전국의 학교가 화상수업을 경험했다. 정부와 국민이 공동체 의식으로 순일하게 뭉쳤던 경험 또한 매우 기이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몰고 올 변화는 뭔지 몰라도 엄청날 것이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떠나야 보이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에라도 올라가 봐야 아웅다웅했던 나의 동네와 부질없는 인생사가 한눈에 보인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다가 가출이라도 해봐야 갈 곳 없는 자신의 처지도 알게 된다. 단편적으로 세상을 보던 철부지가 철드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는 경험했다. 떠나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단면이 아니었다. 일상에 파묻히면 본다고 착각하고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문명의 이기 앞에 환경파괴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늘에 구멍이 난지 오래되었지만 이 역시 불가역적인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단 몇 달간의 일시정지만으로도 지구는 돌아오고 있었다. 맑은 하늘과 맑은 공기, 너울거리는 5월의 신록이 얼마만이던가? 황사로 하늘이 누렇던 작년만 해도 푸른 하늘은 끝장난 줄로만 알았다. 지구 회생의 희망이 보였다. 잘하면 되겠구나 싶어 졌다. 작은 일이지만 전기라도, 혹은 물이라도도 아끼고 싶어졌다. 전기차는 언젠가는 사게 되겠지가 아니라 언젠가는 꼭 구입해야 할 계획이 되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고마웠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어떤 이는 위기라 하고 어떤 이는 기회라 한다.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어떤 눈으로 현실을 보는가에 따라 대응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진 행동에 따라 미래도 변화할 것이다. 선택은 자유다.
나의 직장에는 회식을 할 때 젓가락 숟가락을 섞지 말자는 분위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침은 균이 많기 때문이다. 회식을 하면 개인 접시에 반찬을 미리 덜게 했다. 개인 숟가락을 된장찌개에 넣지 않고, 침묻은 개인 젓가락으로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지 않도록 했다. 인식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알고 나니 더러워서 못 먹겠더라.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유난 떤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내 침이 그렇게 더러우냐? 는 식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분도 많았다. "괜찮아, 같이 먹어도 안 죽는다."며 당당하게 무책임했던 분도 많았다. (당당하게 마스크 거부하는 유럽 사람들 같다 ㅎ) 우리를 가장 못마땅하게 보는 분들은 식당 사람들이었다. 상에 숟가락 젓가락이 수북하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공용 젓가락을 무심코 내 입에 넣게 된다. 어! 하다보면 어느새 내 앞에 젓가락 3쌍 정도는 쌓여있기 일쑤였다.
코로나 19로 이런 갈등이 완전히 정리되었다. 상대를 위해 침을 튀기지 않고 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의 모친은 감정적이고 자존심도 강한 분이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섭섭해하고 노여워해서 자식들을 난감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 모친이 매우 이성적으로 변할 때가 있었다.
60년대 그때 그 시절에는 커피가 매우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장식장에 모셔져 있던 커피병을 어린 내가 떨어뜨렸다. 산산조각이 났다. 커피 알갱이는 유리 파편에 뒤섞여 골라낼 수도 없었다.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모친은 차분하고 평온했다. 따사롭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집안에 위기가 올 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담담하게 극복했다.
이태원 클럽의 코로나 집단 감염 사례를 보면서 나는 그때의 엄마가 떠올랐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고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온갖 불안이 수면에 떠올랐다. 갖은 편견과 욕설과 비난으로 인터넷도 소란스러웠다. 상황이 길어질수록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만 더 힘들어진다. 방역당국은 차분했다.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신원 노출, 동선 공개를 하지 않겠다며 안심시키고, 단지 적극적인 검사만 당부했다. 전수조사를 위한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동시에 철저한 문제 해결의 의지도 보였다. 집안에 기강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겁을 주거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방임하거나 숨기지 않아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를 닮아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문제의 핵심보다는 쌓인 감정이 관계를 악화시켰다. 내 삶에 가장 큰 걸림돌은 미움이었다. "니 년이 미우니 니 목소리도 듣기 싫고, 니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도 보기 싫고, 니 년이랑 친한 사람도 보기가 싫다."는 식이었다. 나이가 들며 싸우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굳이 미운 사람과 뒤섞여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무시하고 피했다. 자꾸 마주치면 미움으로 속이 들끓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옳지는 않지만 "더러운 똥은 피하고 사는 게 맞지." 정도로 나의 태도를 정리했다.
이태원 클럽 코로나 감염 상황을 보면서, 또 어린 시절 엄마를 떠올리며 나를 다시 돌아봤다.
나의 직장은 공동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곳이다. 내 인생에서도 소중한 가치다. 직장 동료들 역시 그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일하지만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와 관습과 삶의 태도는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다. 나와 달라서 불편한 사람, 그러나 가치가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다. 금을 그으며 사는 나의 태도는 과연 옳을까 생각했다.
나의 태도에는 "니가 그 따위로 한다면 나도 요 따위로 대해 주겠어!" 하는 보복심리가 분명 깔려 있었다. 거슬리고 불편한 나의 감정은 소중했으나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다. "당신은 그런 인간"이라고 단정 지었다. 미운 그녀1은 왜 그렇게 말할까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니 가시 같은 감정이 확 날아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더라도 담담하게만 대해도 감정의 골은 무뎌지지 않을까 싶었다. 니가 내 마음에 쏙 들게 굴어달라는 기대는 말이 안된다. 나는 누구 마음에 쏙 든다고...
오늘, 미운 그녀2가 몸이 아팠다. 나는 얼른 차키를 들고 나왔다. "내가 데려다 줄께." 그녀는 진심 고맙다 했다. 그녀가 생생해지면 우리의 일은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소소한 희생이다.
침은 몸 속에 있을 때는 더러운 줄 모른다. 아니 더럽지도 않다. 그러나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세균덩어리가 되어 피해를 주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마친가지다. 내 속에서 미움이 들끓고 있을 때는 잘못된 줄도 모른다. "내 생각이 맞고, 내 판단이 옳다."는 고집 때문에 내 마음이 얼마나 옹졸하고 추한지를 못 보는 것이다. 이 마음이 입 밖으로 토해지고, 표정에 묻어나고, 갈등으로 표면화되면 그 추함도 드러난다. 그걸 성찰하는 것은 내 마음의 주인인 나의 몫이다. 드러나기 때문에 닦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자.
세상에 나쁜 일은 없다. 코로나 19로 잃은 것도 있다. 그러나 얻은 것이 한량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