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냉이꽃 May 22. 2020

명상하는 언니의 사소한 파급효과

내가 먼저 달라져보기



"한 번 보고 가야지.. 기분 좋은 사람!"

활짝 웃으며 펴든 손바닥을 빙글빙글 돌리셨다. 아침인사였다. 그러고는 가까이 와서 얼굴을 바짝 디밀고 "아 하하하 " 하신다. 나도 허둥지둥 구겨진 인상을 활짝 폈다. 그리고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아 하하하하"


엉겹결에 웃고나니 쑥스러웠다. 불만이 서려있는 뚱한 얼굴로 모니터만 보고 있다가 갑자기 밝게 웃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바람처럼 지나가고서야 내가 꾹 누르는 마음으로 애를 쓰며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기분 좋은 사람일 리가 있나.


그건 언니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언니가 만들어 가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 자원봉사가 행복해 죽는 언니


나이 70이 훨씬 넘어서도 봉사활동을 하는 언니였다. 조심성이 많고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사무실 문이 열려 있으면 "보고 가야지~ " 하시며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그녀는 젊은 시절 양장점을 했다. 그 솜씨를 살려 떨어진 환자복 수선이나 리폼을 해주신다. 세탁업체가 자꾸 구멍을 낸다며 일일이 짜깁기도 하신다. 손쉽게 버리지 않으셨다. 수족을 쓰기 힘든 분이 환자복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요리조리 오리고 기워도 내신다. 누가 부르면 불러줘서 고맙다 하시고, 일을 맡기면 맡겨줘서 고맙다 하신다.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어서 사람들은 이 언니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언니는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어떻게 늙지를 않는대?"

"아냐~ 그때가 훨씬 형편없었지. 내가 봐도 요즘 내가 너무 좋은 것 같아~. 자기도 누가 '좋아졌다~ '그러면 인정을 좀 해~ " 내가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넌지시 나무라시는 것이다. 


이 언니도 명상을 한다. 먼저 간 남편도, 아들과 딸도 같이 명상을 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을 먼저 보내고도 그림자가 없었다. 내가 낳고 기른 자식이라고 자식의 삶에 무례하게 침범하는 일도 없었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 작은 텃밭에 강낭콩이며 토마토를 심고 가꾸신다. 그러고는 아침 해가 너무 이뻤다고 자랑을 하신다. 늙는 줄도 모르고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맞아, 그냥 감사한 것 밖에 없어. 감사하니까 하루 종일 너~무 기분이 좋은 거야^^ 이것두 감사하구 요것두 감사하구.. 하핫" 삶에 군소리가 없는 흰 종이같은 언니시다. 명상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나는 이 언니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 며칠 전 에피소드 - 남의 마음 찌르기


얼마 전이었다. 젊은 직원이 나에게 조언을 했다. 나하고 얘기하고 나가던 남자 직원이 표정이 안 좋더라고, 뭔가 밝지 않고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마음에 걸리더라. 그분은 얘기를 들어주는 데가 없지 않으냐. 그러니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뭐 그런 얘기였다.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듣다가 슬슬 화가 났다. 나도 지금 업무 과부하가 걸려 있는데 내가 남의 행복한 얼굴까지 책임져야 되나? 왜 나만 갖고 그래? 내가 동네 북이냐? 내 말은 누가 안 들어주나? 뭐 그런 심정이었다.


성질이 나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니가 해라. (들어주는 거)" 

'니가 가라, 하와이' 처럼 말해 버린 거다.


# 솔직하게라도 말해보기


칠순 넘은 언니의 하심과 밝은 아침 인사 덕분에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불장군처럼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울퉁불퉁한 나의 성격 때문에 눈치 슬슬 살피는 젊은 직원을 더 불편하게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니 나한테 삐졌지?"

"응??? 아니, 아~ 그거? 다 잊었어요."


"니는 엄청 고민하고 신중하게 얘기한 건데 내가 너무 딱 잘라서 '니가 해라!' 그랬잖아. 삐졌지?"

"나도 바쁘니까.. 나는 사람 얼굴 딱 보고 아니다 싶으면 속으로 '아~됐다.' 하고 말아. 딱 포기하고 고개 처박고 그냥 내 일만 해~ 대화는 무슨... 이 사무실에서 큰소리 안나는 것만 해도 나는 잘하는 거라 생각한다. 아 하하하하"

어떻게 말해야 할 지를 몰라서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변명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니에요. 힘드신데 내가 간섭해서 미안해요. 나도 이제 주변이 보이다 보니 들어주고 잘해야겠다 싶어서..."


굳이 오해를 풀려고 애쓰지 않았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계산 없이 그러나 솔직하게 각자의 말을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일을 해결하려고 애를 썼다. 지나간 문제를 되짚다보면 변명을 하게 되고, 오해를 풀려고 애쓸수록 일은 꼬여갔다. 마지막에는 꼭 가르치는 투로 조언을 하여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해결은 커녕 마음을 접게 되는 일이 더 많았다. "다시는 너하고 얘기하지 않겠다..."



# 줄타기 곡예같은 인간관계


화해를 위해 젊은 직원과 나는 박하차를 마시고 있었다. 남자 직원 한 명이 복사하러 왔다가 우리를 힐끗 봤다. 


대뜸 "오줌 색깔이네 ㅋ" 하고는 도망간다.

"이 새끼가(살살 말했다).... 야!(고함질렀다)"


내가 싸가지 없이 함부로 대하는 직원이다. "왜 니만 보면 욕이 나오냐?" 해가며 거칠게 대하다 보니 막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싸움으로 번지지 않고 장난으로 끝내지는 것은 서로가 솔직해서이다. 둘 다 하자많은 사람이지만 뒤끝이 없어서 괜찮았다. "두고 보자"만 없어도 인생이 사람 때문에 고달프지는 않았다. 조금 과하다 싶으면 한 번씩 무게를 꾹 잡는다. 그러면 서로가 더 이상의 선을 넘지는 않게 된다. 뭐가 바르고 옳은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만.


"이게 영양제(링거) 색깔이지, 어떻게 오줌 색깔이냐?"

"아 하하하하하" 

젊은 직원과 나의 오해 풀기는 오줌 색깔 진위를 따지는 것으로 끝났다.


오해? 풀려고 하면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것이 오해다. 서로가 힘들어서 눈치만 살필 뿐이다. 마음에 욕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풀려하면 수고가 크다. "그게 아니고, 내 말 들어봐..."가 반복된다. 각자의 속셈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내가 참고 말지..." 하며 움켜쥐면 그 마음은 돌덩이처럼 굳어 버린다. 그리고 오장육부 어딘가를 꽉 막아버린다.





출근하자마자 들었던 인사 한마디의 여파는 하루 종일 갔다. 궂은 일도 먼저 나서서 했고, 먼저 인사도 하고, 웃으며 손도 흔들었다. 슬쩍 웃음을 나눴던 여사님은 웃으며 상추를 가져왔다. "우리집 텃밭에서 키운거예요^^" 나처럼 모나고 뻣뻣한 인간이 이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것이 어디냐 싶었다. 아니 이 작은 말과 몸짓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던졌던 나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 마음 씀씀이는 어디에서 어떤 파도를 일으켰을까. 그나마 기분 좋은 언니가 말 한마디라도 해 주었던 것은 항상 사무실 문을 닫지 않고 열어둔 덕이었다. 세상이 나에게 말이라도 걸어올 수 있도록 문은 열어두자. 그 덕에 조금이라도 하루가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