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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Oct 12. 2020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나요?


잘못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고치지 못한다면 깨달음이 아닙니다. 깨달음만 즐기는 사람은 많습니다. 알고는 싶지만 자기를 바꿀 마음은 없는 것이죠. 수없이 많은 위선자들이 그렇고, 오래도록 제가 그랬습니다. 


깊이 뉘우치면 광인도 성인이 될 수 있고, 성인도 뉘우치지 않으면 광인이 된다 했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친 자는 달라집니다. 나의 삶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집니다.


정약용은 말한다. 성인과 광인의 차이는 "뉘우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문장의 온도> 이덕무, 다산초당, 2018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요?


인간의 잘못은 하나 뿐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입니다. 마음에 미움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어디를 가도 미워할 일이 생깁니다. 저 인간이 미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저 인간이 미운데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입니다. 내 속에 미움이 있어서 나만 미운 겁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진 만큼 삽니다. 예컨대, 도둑놈 눈에는 도둑만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찰 눈에도 도둑만 보입니다. 마음속에 도둑이 있기 때문에 도둑을 알아보고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둑과 경찰이 자기를 이해하려면 둘 다 도둑이라는 마음 세계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리고 도둑이라는 마음 세계를 버리면 두 사람은 달라집니다. 도둑은 훔치는 마음이 버려지니 안 훔쳐도 살 수 있게 됩니다. 경찰은 자기가 아는 도둑의 세계를 넘어서니 모든 것이 더 잘 보입니다. 산적 소굴에 들어간 스님이 산적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의 이치를 모르면 마음에 잡아 먹히게도 됩니다.


어릴 때부터 때리는 부모를 본 사람은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조건이 되면 폭력을 쓰게 됩니다.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니까요. 때리는 사람은 때리면서, 맞는 사람은 맞으면서 폭력이라는 마음 세계를 가지게 됩니다. 때린 부모와 맞은 자식이 달라지려면 둘 다 폭력이라는 마음 세계를 돌아보고 버려야 합니다.  


사랑의 배신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도, 신혼의 단꿈에 취한 사람도 사랑이라는 마음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상처를 받는 것이고, 있던 사랑이 퇴색하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워집니다. 


행복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도 행복이라는 마음 세계를 성찰하고 버려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채워지면 행복하고 그것을 잃으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잃을까봐 집착하고 불안한 것이죠. 돈과 사랑과 인연과 명예에 집착하는 이유가 모두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있다면 그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마음이 버려지면 죄는 없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죄지을 일도 없습니다.



늙은이는 무엇으로 사는가요?


백세 시대가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노인은 은퇴를 해도 족히 30년은 더 일해야 합니다. 정작 치매가 오고, 큰 병을 얻고, 모아둔 돈을 써버리고 나면 돌봐줄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 노인에서 하류 노인으로 느닷없이 전락하는 것이죠. 중산층 노인도 한 순간에 전락한다 합니다. (참고 : <하류 노인이 온다> 후지타 다카노리/청림출판, 2016)


시골 마을에 봉사를 다닌 적이 있는데요. 빈곤 노인의 실태는 예상보다 열악했습니다. 냉장고에는 정체모를 음식이 말라가고 있었고, 자식들 손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리가 완전히 꺾어진 어르신이 이불 속에 감춰둔 통장을 자랑하셨습니다. 노령연금 같은 것이 꼬박꼬박 저축되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 누군가가 가져가겠죠. 


노후의 빈곤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르신처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말고 무슨 대책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믿을건 돈 뿐이라 돈을 모았지만 돈돈돈 할수록 불행했던 것 같습니다. 치매가 오자 아들 며느리를 의심하기 시작했죠. 저것들이 내 돈을 마음대로 쓴다고. 돈을 모으기보다는 돈에 묶인 마음부터 돌아보고 비워야 합니다. 세상에 밀려나는 것을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돈과 인연과 명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마음의 본질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채워도 고마워할 마음의 여유가 안생깁니다. 저도 왜 이렇게 고마운 마음이 없고 마음 밑바닥이 냉랭한지 심각하게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허기와 욕심이었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걸신처럼요. 걸신에게 먹을 거 준다고 고마워할까요? 더 내놔라고 난리겠죠. 


꼬장꼬장하게 고집이나 부리고, 사람들 속 터지게 만들고, 대접 안 해준다고 노여워할 때가 아닌 거죠. 정신 멀쩡하고 기력 있을 때 돌아봐야 합니다. 왜 사는지, 이 긴 세월 동안 뭘 했는지,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왜 곤궁하고 불행한지, 평생을 희생했는데 왜 말년이 외로운지, 왜 젊은이들이 늙은이를 힘들어하고 싫어하는지 말입니다. 아주 늙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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