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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엔 두 명의 대단한 자린고비가 있다. 한 명은 뉴욕 출신 지안 또 한 명은 대만 출신 샐리다.
이 둘은 서로 상대가 자기보다 더 캐치(けち : 인색함, 쩨쩨함, 그런 사람)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이닝룸에서 서로 누가 더 캐치인지 게임 중이다.
37도가 넘는 더위에 체감온도는 40도가 넘는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샐리는 선풍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자기는 쓰지 않는다는 선풍기를 내 방 앞에 놓고 갔다. 이 더위에 너는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부채질만 해도 시원하단다.
지안은 한겨울, 내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전기세로 1등을 할 때, 전기세로 천 원을 낸 사람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집 구조상 히터 없이 지낸다는 건 불가능인데, 한 번도 히터를 틀지 않고 형광등을 백열등으로 바꾸고 솜이불 두 개와 털 점퍼 두 개로 겨울을 보냈다고 했다.
샐리는 중국산 프라이팬에선 발암물질이 나온다며 자신은 건강을 위해 몇만 원짜리 일제 프라이팬을 샀다고 했다. 그 말은 들은 지안은 몇만 원짜리 프라이팬을 사느니 그냥 중국산 프라이팬을 쓰고 일찍 죽겠다고 한다. 샐리는 지안이 캐치라고 말한다.
샐리는 지안이 일본어 공부를 위해 산 1급 한자 카드가 7만 원이라는 말을 듣더니 종이에 써서 만들면 될 것을 7만 원씩이나 주고 샀냐고 핀잔이다. 지안은 샐리에게 캐치라고 말한다.
샐리는 자기는 돈을 벌지 않는 학생이니, 결국 최고의 캐치는 돈 버는 지안이지 않겠냐고 묻는다.
이 둘의 캐치 놀이는 재미있다.
그런데 저 둘은 나를 사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겠구나.
나는 최근에 작은 냉장고를 새로 샀다.
구두쇠 집주인의 고물 냉장고는 이제 사요나라!
한국에서 엄마가 직접 담근 김치를 국제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달짝지근한 일본 김치만 먹었는데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는 황홀한 맛이었다. 그런데 귀한 김치를 보관하려고 보니 냉장고가 마땅치 않았다.
내 몫으로 배정받았던 냉장고 야채칸이 완전히 고장 났다. 냉기가 거의 나오지 않아서 음식물이 상해서 버리는 일이 잦았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동고는 아예 사용을 포기하고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두고 먹는 일은 꿈도 못 꿨다. 게스트 하우스에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제대로 음식물을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빙하 시대도 아니고 냉동고에서 누군가 두고 간 3년 된 연어를 발견했다. 꽁꽁 얼어버린 보드카도 주인이 없어 보였다.
가난한 유학생이 굳이 냉장고까지 사야 할까, 좁은 방에 냉장고까지 둘 필요가 있을까, 일 년 정도를 그렇게 고민하며 불편하게 살다가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를 핑계로 사치를 부렸다. 그리고 이 게스트 하우스 역사상 개인 냉장고를 소유한 첫 번째 게스트가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사치스러운 유학생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만족감은 대단히 높았다. 처음으로 아이스크림도 사다 놓고 먹었다. 시원한 보리차도 마셨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보이는 커다란 김치통에 웃음이 났다.
개인 냉장고를 소유하고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가까이에 두고 언제든지 시원하게 먹는 즐거움에 행복했다. 일본어 사전에 사치(さち [幸] : 행운, 행복, 자연계에서 얻은 음식)이란 단어가 있는데 우연하게도 ‘사치’라는 발음이 같아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이렇게 냉장고에 감사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일본 생활은 그동안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