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ll Light Aug 29. 2022

크리스틴 여사님

10


좋게 나이 드는 건 자유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나쁘게 나이 드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고. 

                              (책_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게스트 하우스에 노부인이 이사 오셨다. 

노부인이 살기에는 누추하고 불편한 곳인데,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웃는 얼굴이 매우 인자한 멋쟁이 할머니인데 키가 나보다 크고 허리도 나보다 더 반듯했다. 

연세가 있어 보였지만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실례라고 생각될 만큼 건강하고 활기가 넘쳤다. 웃음소리에서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크리스틴 여사님은 호주분이셨는데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혼자 남은 인생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동남아시아 한 곳과 일본에 영어 교사로 지원했는데 일본과 연이 닿아서 영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낯설고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데, 크리스틴 여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스러웠다.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힘드실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한눈에도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분이셨다. 


어느 날, 크리스틴 여사님 방 앞으로 지나다가 방에 계신 여사님과 인사를 나눴는데 여사님은, 나와 근처에 있던 다른 친구 한 명을 방으로 불렀다. 일본의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는데 여사님은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테라스로 나가 햇빛을 받으며 명상과 요가를 하신다고 했다. 

여사님은 우리에게도 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 하셨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종이에 요가 동작을 귀엽게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셨는데, 간단하지만 정확한 그림에 감탄했다. 


크리스틴 여사님이 그려주신 요가 동작




여사님은 게스트 하우스 친구들을 찍은 흑백 사진 프린트를 보시고 fabulous! fabulous! 를 외치셨다. 

손녀를 무조건 칭찬해주는 우리 외할머니 같았다. 


여사님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방으로 찾아갔다. 단아한 흰색 블라우스와 진주 목걸이로 예쁘게 차려입으신 여사님의 키가 평소보다 더 커 보였다. 

크리스틴 여사님의 방에서는 차분하고 우아한 중년 여성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낡은 소파에 커다란 천을 씌우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앞에 배치했다. 여러 가지 색색의 실크 스카프를 벽에 길게 늘어뜨려 단순하면서도 멋스럽게 연출했다. 오직 패브릭으로만 방을 장식해서 통일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여사님의 센스가 돋보였다. 요가를 위해 작은 테이블 하나만 배치하고 많은 물건 없이 정리한 깔끔한 방이었다.





크리스틴 여사님은 내가 특별한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모델처럼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 주셨다. 노인의 표정도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편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익살스럽게 웃거나 일부러 과장된 포즈도 해주셨다.

여사님은 사진 찍히는 걸 무척 즐기셨고 덕분에 나도 사진 찍는 게 즐거웠다.


나이가 들면 크리스틴 여사님처럼 늙고 싶다. 

스스로를 무력하고 하찮은 노인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다. 


크리스틴 여사님의 카드 메세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하라.

성장하고, 껴안고, 즐겨라 (Chris Maconachi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