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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룸에서 소냐가 울고 있다.
항상 긍정적이고 인간애와 포용심을 갖춘 소냐가 우는 건 처음 본다. 아니 이곳에서 우는 사람을 처음 본다.
일본 전통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소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일 오래 산 프랑스인이며,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7년째 살고 있었다.
얼마 전 소냐는 몇 년간 준비한 논문을 대학교수들에게 발표했다. 피곤하고 어두운 얼굴로 집에 돌아와서는 교수가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했다면서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논문을 위해서 애써 온 시간 중에 내가 본 것은 고작 몇 년뿐이었지만, 그가 논문을 위해서 쏟아 왔던 시간과 고생은 잘 알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소냐는 집순이였다. 항상 소냐의 방은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고, 새해맞이 파티로 다른 친구들이 파티 장소로 떠나도 혼자 남아서 공부했다.
다이닝룸에서 어려운 책에 얼굴을 파묻고 골몰하고 있는 소냐의 모습은 너무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물을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써야 한다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뭔가 위로해주고픈 마음이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어주는 일밖에는 해줄 것이 없었다.
소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맏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소냐를 좋아했다.
그녀의 방에 놀러 가면 반도네온 연주도 해주고, 촬영을 마친 소품 꽃을 선물하면 엄마 같은 미소로 고맙다며 프랑스식 볼 키스인 비쥬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소냐가 다시 힘을 내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다시 논문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소냐는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Life is beautiful!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학교 입학 전, 나는 비싼 사진 재료비를 벌기 위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었다. 한국인 사장은 월급을 반만 주고는 나머지 반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에게는 야쿠자 친구가 있으니 그를 시켜 나를 해코지하겠다고 협박했다.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고가의 고급 프린터기를 샀는데, 내가 배송받은 건 고장 난 프린터기였다. 교환을 요청했더니 제품 회사의 AS 센터에 직접 보내서 수리해서 쓰라는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어떤 한국인 유학생은 취업 활동이 시작되는 졸업 시즌이 되자, 나에게만 엉터리 취업 정보를 알려 주기도 했다.
서럽고 분해서 울 때마다 힘이 되어준 것은 게스트 하우스 친구들이었다.
방에 처박혀 며칠 동안 히키코모리가 되었다가도 방 밖으로 나오면 집안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시트콤 같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하자고 불러주는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그런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향수병과 스트레스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Life is beautiful!”
여전히 이 말이 벽에 걸린 예쁜 액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늘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외국 친구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Life is Beautiful'이란 말은 한동안 게스트 하우스의 유행어가 되었다.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