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페미니즘] 네 번째 편지: '외상 후 성장'과 차별
(※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 작가의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이상하죠? 혜미씨 편지를 읽고서 10여 년 전 제 대학병원 생활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낙상사고로 1년 넘게 입원했던 시기요. 당시 정형외과 병동엔 나이 든 환자들이 다수였고 저 혼자 20대였는데, 딱 한 번 제 또래가 온 적이 있었거든요. 꽃같이 예쁜 이름을 가진 여자 친구였고 마침 저랑 고향도 같았어요.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과자공장에서 일하다가, 왼쪽 팔이 기계에 말려들어갔대요.
비교적 가볍게 보여서 '저 친구는 금방 나가겠다' 싶었는데, 며칠 뒤 그 친구가 어깨 아래로 팔을 절단해야 한다는 통보를 듣는 걸 보게 됐어요. 혈관과 신경을 살릴 수 없었다나봐요.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친구 어머니가 의사 말을 듣고 병실 복도로 나가서 우셨는데... 처절했습니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울음보다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였어요.
대통령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상상하는 '청년'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비장애인·남성·4년제 대학 졸업자·사무직 노동자, 그런 얼굴들이 아닐까요. 혜미씨가 짚은 것처럼, 그들이 언급하는 '청년'들 속에 제 친구의 자리는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친구는 씩씩하게 잘 지내요. 3년 전엔 눈빛이 또렷한 아기도 낳았고요. 친구와 저의 경우를 보면서 계속 '소수자성'을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인, 노인, 여성, 아픈 사람, 수급자... 어떤 이유에서든 주류나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 사회의 바깥 경계로 밀려난 사람들. 아팠던 경험이 무슨 쓸모일까 싶었거든요.
<지선아 사랑해> 저자 이지선씨 최근 강연을 접하곤 알게 됐어요. 상처받은 사람이 그 상처로 타인을 감쌀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요. 대학 졸업 즈음 사고를 '만난' 이 분은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어 암흑기를 지나야만 했고, 이후 다시 공부해 사회복지학 교수가 됐대요. 그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개념을 언급하며, 트라우마엔 좋은 점도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질병과 사고, 자연재해 등 전체 인구의 76%가 살면서 한번은 꼭 외상을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고 뒤 긍정적인 변화도 겪는다. 상처를 경험하기 전보다 높은 수준의 성장, 회복을 넘어서는 성장이다.
'사고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거기서 좋은 걸 이끌어내는 건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상처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참사 유가족들이 대표적이겠죠?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산만언니 씀, 푸른숲)를 며칠 전 읽었어요. 저자는 자신도 피해자이면서 다른 유족들을 내내 꼭 껴안습니다. 민식이법(교통안전)과 김용균법(노동안전), 세월호 참사법(재난재해정비) 등 희생자 이름이 붙은 법들, 그들의 죽음 덕분에 우리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요.
고 이태석 신부도 그렇죠. 다큐 <울지마 톤즈>는 딱 제가 사고를 만난 2010년 말 개봉했어요. 저는 당시 4층 건물에서 떨어졌는데 살았고, 그 분은 해외 오지 선교 중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죠. 어느 정도 제 상태가 안정됐을 때 소식을 보곤, 몇 달간 혼자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저 사람은 죽고 나는 살았나.'
죽으면 끝인 줄 알았거든요. 삶이 승리고, 죽음은 패배인 것 같아 보였거든요. 신이 존재한다면 저 사람이 살고,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그분 사연이 알려지면서, 한 대학서 매년 아프리카로 선교사를 보내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태석 장학금'이 생겨나 남수단 청소년들이 의료과정을 공부할 장학금을 주게 됐고요. 당시 마을에서 이 신부를 돕던 꼬마 토마스 아콧씨는, 한국에 와 그 돈으로 의대 과정을 마쳐 지금은 부산 한 병원에 전공의로 있다네요. 그가 출연한 방송 아래엔 이런 댓글이 좋아요 6200여개로 1위였어요.
"종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
저는 제 경험으로 다른 이의 고통을 더 잘 상상하게 됐습니다. 타인의 아픔에도 더 공감하고 연대하게 됐어요. 이건 종교를 지닌 이지선·이태석씨, 그리고 병자·고아·빈자나 사회적 왕따와 어울린 예수에게서 배운 교훈이기도 한데, 2021년 한국 기독교는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이네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면서요.
'성소수자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받은 젊은 목사 이야기를 아시죠? 이동환 목사는 결국 지난 6월 21일부터 서울 광화문 감리교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대요. 교회 내 차별법(재판법 3조8항)을 폐기하라고요. "신의 사랑은 교회법 너머에 있다. 하나님은 성소수자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그는 외칩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빤스 목사' 전광훈 사례까지 꺼내지 않아도, 한국 기독교엔 이미 부끄러운 과거가 충분합니다. 혐오라면 '성소수자 축제 거부할 권리' 운운하는 정치인들 말로도 충분하고요.
청년 예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천막농성장에 와 그는 뭐라고 말할까요. 오늘날 종교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축복도 죄가 되는지... 직접 만나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이지선 교수의 온라인 강연 '아픈 삶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 고통이 어떻게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당신께 추천합니다.
2021년 7월 5일
함께 비 맞는 마음으로, 유성애 드림
'당신곁의 페미니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편지☞ 같이 걷게 될 당신, 멀고도 가까운 당신
두번째 편지☞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
세번째 편지☞ 청년 부르짖는 정치인은 모르는 청년의 심각한 현실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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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