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페미니즘] 다섯번째: 노동자 죽지않는 세상, 언제쯤 올까
길바닥 나앉은 목사, 청년 예수가 봤다면 http://omn.kr/1uci7
(※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 작가의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지난 편지, 이동환 목사 이야기를 꺼내 주셔서 참 반갑기도, 속상하기도 했어요.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 꽤 오랫동안 살았고, 그 지역 감리교회에 다녔거든요. 이동환 목사가 성소수자 축복을 한 그 '문제의' 장소도, 인천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하려다 폭행 사건이 발생했던 곳도 제겐 너무 익숙한 공간이에요. 지금 이 사태가 쿡쿡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지난해 여름, 차별금지법 촉구 평등버스가 인천에 왔을 때도 거기 있었어요. 모든 활동가가 비를 쫄딱 맞으며 행사를 시작했는데 '신도 분들'이 와서 물리적 위력을 가하며 방해했었습니다. 자신이 목사고 전도사라며 막무가내로 소리치는데,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최근 가수 '9와 숫자들'이 차별금지법 지지곡(유튜브)을 발매했는데, 이런 가사가 나와요.
"이건 새로운 시작, 깨질 수 없는 약속/ 난 너의 믿음을 인정할 테니/ 너도 내 사랑을 응원해줄래" ('오프닝' 중에서)
'너의 믿음을 인정할 테니, 내 사랑을 응원해달라'는 말이 아픕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믿는다는 게 어쩌면 가장 이상하지 않나요. 그걸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신자분들도 많잖아요. 역사적으로 차별과 혐오, 배제를 뿌리 깊게 경험한 종교가 어째서 이렇게 무감할까요.
성애님 말처럼, 길바닥에 나앉은 목사를 예수가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져요. 평등을 외치던 젊은 목사를 징계하고, 무거운 재판비용을 물린 이들은 대체 뭘 보고 듣는 건지 찾아가 따지고 싶어집니다.
최근 과로사로 돌아가신 서울대 청소노동자 관련, 필기시험 논란을 아시죠. 기사를 읽는데 왜인지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50대 여성이 심근경색으로 숨졌고 거기서 직무와 관계없는 필기시험을 쳤다는 내용이 참담했어요.
엄마가 고졸이신데, 독립 전 같이 살던 어느 날 제게 영어 발음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공부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하셨었거든요. 그 장면이 겹치는 거예요. 간단한 영어단어 몇 개, 문장 몇 줄….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시절을 사셨겠죠.
어떤 사람들은 출발 지점부터 다른데, 이런 맥락 없이 시험이 모든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나 있는 걸까요. 능력주의, 시험이 공정하다는 말, 저는 그런 말들이 농락같이 들려요. 하다못해 배달 앱, 택시 앱 사용 뒤에도 상대방에 대해 별점을 매기라고 떠 '별점 노동'이란 신조어가 생겨나는 시대죠.
'4단계 거리두기', 코로나가 1년 반 넘게 길어지면서 우린 어쩌면 사람의 얼굴과 말소리보다 네모난 휴대폰 창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상대의 노동을 점수로 손쉽게 평가하는 시대, 그게 당연한 듯 느껴지는 요즘,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는 아직도 먼 미래의 일만 같습니다. 속이 상합니다.
성애님과 저는 국회 앞에서 처음 만났지요? 이런 불평등 앞 정치는 뭘 할 수 있을까 싶어 집어든 책이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였는데, 저자는 "정치적 자원은 어디서든 불평등하게 분배된다"고 말해요.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평등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평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정치적 자원,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수단 - 돈과 정보, 시간, 직업 등'은 애초부터 불평등하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고요. 그는 '고소득이 곧 행복'이란 공식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경쟁과 소비만이 아닌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할 때 '정치적 평등'에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을 마칩니다.
문장들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지만, 책이 나온 지 벌써 15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논의를 반복 중이란 걸 알고는 좀 답답해졌어요. 주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정치인들은 늘 '대출규제 완화'로 답하곤 하죠. 규제완화로 또다시 내집 마련을 부추기는 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봐요. 이건 주거권 보장책이 아니라, 부동산 공화국을 다시 공고히 만드는 것 같거든요.
안정적 주거보장 촉구에 '집 사라' 정책으로 답하는 요즘,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야 세상이 바뀔까 싶습니다.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인터뷰에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더라고요. "사람들의 집에 대한 소유욕을 인정하라"라는 발언이요. 게다가 '주 120시간 노동'을 언급하는 걸 보고는 그 후진 노동관에 한숨이 푹 나왔어요.
이번 편지는 다소 우울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요즘 어쩌다 키우게 된 아기고양이와 좌충우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다음엔 꼭 소개할게요. 고양이를 돌보며 느끼고 배우는 게 참 많거든요. 그럼 저는 오늘 찍은 고양이 사진을 보며 기운을 차려볼게요.
▲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책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정치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당신과 같이 읽고 싶습니다.
2021년 7월 20일
'아깽이(새끼고양이)' 기운을 전하며, 김혜미 드림.
'당신곁의 페미니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편지☞ 같이 걷게 될 당신, 멀고도 가까운 당신
두번째 편지☞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
세번째 편지☞ 청년 부르짖는 정치인은 모르는 청년의 심각한 현실
네번째 편지☞ 길바닥 나앉은 목사, 청년 예수가 봤다면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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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