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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핀 유성애 Aug 18. 2021

[당신곁] 이런 사회...아이를 낳고싶다, 낳고싶지않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여섯번째: 2021, 남성이 여전히 기본값인 사회

필자 주: 이 편지는 포털 네이버에서 1300여개 댓글이 달리며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https://bit.ly/2W42DrG 생산적 논의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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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 작가의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지쳤을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여섯번째 편지: 지쳐있을 당신께 


아끼는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딸이라네요. 듣자마자 정말이지 벅찬 마음으로 친구와 '튼튼이'의 건강을 기원했어요.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4명, 부부가 한 명도 채 낳지 않는 대한민국. 새로 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이 나라에서 친구는 여러모로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용기를 닮고 싶기도, 닮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다, 되고 싶지 않다'. 요사이 제 안에선 두 생각이 싸웁니다. 혜미씨가 알다시피 저는 30대 중반의 건강한 청년이지요.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이고요. 아깽이(아기고양이)를 임시보호 중이고, 조카바보인데다 SNS에서 친구 자녀들 사진을 볼 때마다 '좋아요'를 날립니다. 그런데도 임신·출산을 망설이는 건, 그 이후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아이가 살아갈 사회가 여전히 위험하고 후진적인 데 대한 걱정 때문이에요.


정치권 여가부 폐지 주장의 속내 
    

         

아끼는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딸이라네요. ⓒpixabay


지난주엔 양궁선수 안산씨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말들이 많더라고요. 머리가 짧으면 페미니스트고, '페미'에겐 금메달을 빼앗아야 한다고 외치는 남성들이 있다고 해 놀랐습니다. 그들의 근거 없는 떼쓰기와 괴롭힘이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기사화되는 것 역시 옳지 않아 보였고요.


여성 독립운동가가 쓴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책에 따르면, 1925년 한국에선 여자가 단발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신문기사에 났다고 합니다.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안산 선수에게 쏟아지는 악플과 비난을 보며, 100년 전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 웃기고도 슬펐습니다. 여자가 자기 머리모양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하나요?


한편 제가 최근 가장 분노했던 건,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었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날 여가부 폐지론을 주창한 유승민·하태경·이준석이요. 셋이 합쳐 40여 년 정치를 한 정치인들이 이를 한날한시에 외친 건, 이게 표몰이에 도움이 된다고 계산했기 때문이겠죠. '여가부를 없애 그 예산을 남성에게 주자'니,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고 느꼈습니다.


여성을 위해서도 여가부 폐지가 옳다는 그들, 그러나 그 진정성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여가부의 선기능은 무시한 채 부정적인 면만 골라서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거든요. 여가부는 가정폭력·경력단절 등 여성 지원뿐 아니라 노인과 청소년, 이주여성 등 사회적 약자도 지원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는 건, 아마 그들이 노리는 게 일부 남성의 얄팍한 표일 테니 그렇겠지요.

              

안산 선수 숏컷에 대한 논쟁을 다룬 영국 방송 BBC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글. 이들은 '논란'이 아닌, 숏컷에 대한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라 말합니다. ⓒBBC

 

그까짓 정치인의 말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 주장은 단시간 표몰이를 위한 언어적 수사에 불과할 수 있죠. 그러나 제가 절망스러운 건, 유력 정치인들이 이런 주장을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는 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여가부 폐지가 공약화되는 사회, 그게 표가 되는 시대에선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화가 나기도, 비참하기도 했고요.


부성, 남성이 기본값인 사회


혜미씨, 혹시 대한민국 아이들 성의 기본값이 남성인 것을 아시나요? 결혼하면 하는 혼인신고가 그렇습니다. 국내법 '부성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태어날 아이는 기본적으로 아빠의 성을 따르게 돼 있고, '유별나게' 엄마 성을 따르려면 별도 서류를 내야 해요(관련 기사: 혼인신고서 작성하다 깜짝... 우리 부부가 '비정상'인가요).


최근 앞서서 이런 선택을 한 부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선택 뒤에도 오랫동안 남편 쪽 가족에게 시달렸다고 하더라고요. 자녀계획은 아직 없지만, 저 또한 혼인신고 때 '엄마성 쓰기'에 체크했고, 그래서 시댁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쉽지 않은 제 상황과 겹쳐져서 정치인들 발언에 대한 분노가 더 컸던 것 같아요. 마음속 폭풍우가 치는 것 같았습니다.

              

혼인신고서 양식 4번 항목은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묻는다. ⓒ대한민국 법원

 

정치선동에 나선 이들을 보며 떠올립니다. "정치가 영혼을 구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비통한 자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일이어야 한다"는 한 평론가의 문장을요. 화가 날 때마다, 트럼프를 비롯해 갈등과 차별을 조장했던 정치인들 말로가 어땠다는 걸 생각하며 열을 식혔습니다. 


남자의 대를 잇는 게 기본인 핏줄 사회, 여자 머리가 짧다고 손가락질하는 성차별 사회,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잘 모르겠어서 겁이 납니다. 실은 너무 잘 알아서 겁이 나는 것도 같아요.


제 고민을 들은 혜미씨 마음엔 지금 어떤 생각들이 머물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고 싶다, 낳고 싶지 않다'... 결론이 어디로 향할진 모르겠지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부디 지금보다는 더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길 소망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어른이 되려고요.


그때까지 혜미씨와 저, 그런 어른들의 심신이 강건하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작은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여자의 단발, 이게 별 문제거리가 되지 않음에도 여기저기서 얘깃거리가 되는 듯합니다. 단발은 여성 개인의 취미와 각오에 의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산 숏컷 논쟁이 답답한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2021년 8월 3일

혜미씨 생일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성애 드림


'당신곁의 페미니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편지☞ 같이 걷게 될 당신, 멀고도 가까운 당신

두번째 편지☞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 

세번째 편지☞ 청년 부르짖는 정치인은 모르는 청년의 심각한 현실

네번째 편지☞ 길바닥 나앉은 목사, 청년 예수가 봤다면 

다섯번째 편지☞ 노동자 과로사하는데... 윤석열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은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필자소개: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태그:#성평등#글쓰기#당신곁의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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