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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Aug 26. 2024

회사 밖으로 나온 직장인, 한 달간 글 쓰고 깨달은 것

다윗과 골리앗은 계급장 떼면 똑같다


몇 달 전 있던 일이다. 내가 썼던 단독 기사가 저녁 메인 뉴스에 나갔고, 밤사이에 조회수가 220만이 넘었다는 본문 내용이 담긴 공지문이 회사 게시판에 떴다. 이 공지문은 매일매일의 유튜브나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조회수를 분석해서 올라오는 그냥 평범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 뉴스가 그날 전국 공중파 유튜브 조회수 1위인가 2위를 했다던가. 그렇기에 디지털국에서 '이례적인 일'이라는, 공지문에 쓰기에 이례적인 단어를 써가며 본문을 써놓았다. 덕분에 나는 국부장의 부름을 받아 아침부터 칭찬 세례를 받았다. 나중엔 이 기사로 사내 포상도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을 5천만이라고 어림잡아보면, 그중 4%가 그 기사를 소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말이 4% 이지, 유튜브를 보는 이중에 알고리즘을 타서 저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을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계산도 어렵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 개인으로써 나는 가닿기 어려운 숫자란 말이다.


그런데 대형 언론사를 등에 업고 쓴 글은 월급쟁이에 불과한 기자에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런 기적을 선사했다. 220만을 넘었다고 평기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그런 건 없지만, 굉장히 기분은 얼떨떨하고 좋았다. 조회수에 연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직업인, 기자로서 하면 일이라는 개인적 믿음 따위를 갖고 있지만 이날 나는 이 일을 동네방네 알리고, 침대에서는 혼자 곱씹었다. 200만이라니! 200만 이라니!


그리고 얼마 전 개인적으로 이와 엇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주, 카페를 끊은 지 100일쯤 되는 걸 기념해 글을 한 편 썼다. 제목이 다음 포털 알고리즘의 시선을 끈 것이었는지, 아니면 카페에 하루에 무려 5만 원이나 쓰는 바보는 대체 어떤 놈인지 궁금했던 것이었는지 하여튼 이 두 가지 내용을 섞어서 단 제목의 글을 4만 명이나 읽은 것이다. 그날 아침 갑자기 천 명이 읽었다지 않나, 곧 2천 명이 되더니 저녁이 되자 만 단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날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하다가 번뜩 떠오른 주제, 무려 후배보다 월 300만 원을 덜 받으며 일한 나의 동일노동 비동일임금 경험담이 전국의 6만 분의 독자께 가 닿은 것이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요즘 뜨는 신작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게 두 가지 성공사례만 이야기하니 가는 곳마다 특종만 터뜨리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나의 정체를 숨기고 이곳에 '내 글'을 쓰는 것은 글로 먹고사는 나조차도 두려웠다는 것을 고백한다. 대형 언론사라는 뒷배경 없이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나 있을까 하는 우려. 읽힐 만한 글을 쓴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쓰는 데 지쳐서 나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원래의 취지를 생각해 보자면, 조회수에 연연해서는 안 되지만 (원래 하던 것처럼) 신경 쓰지 않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처음에는 조회 수가 나오지도 않았다. 가족을 제외하면, 얼굴 모를 20에서 70명 남짓의 독자가 내 글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었다. 거의 한 달쯤.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글을 읽어주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다니! 신선한 경험이었다. 회사에서 200만 성적표를 받았을 때보다 좋았다.) 그리고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조회수가 터지는,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제 내가 직면한 문제는 막 소소한 조회수에 기쁨을 느끼는 법을 알았는데, 조회수가 그만 훅 뛰어버렸다는 것이다. 두 번의 글이 연달아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지금, 기쁨도 있지만 중압감에 짓눌리고 있다. 내가 조회수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부담을 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읽힐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쓴다. 회사의 후광 없이 성장의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개인들도 (잘 정제되어 있기만 하다면) 온라인 속에서는 대형 언론사의 기사만큼의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소비자는 뉴스든 블로그 글이든, 아니면 커뮤니티에 묻혀 있는 게시글이든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언론사들만 쥐고 있던 '(읽힐) 권력'도 개인에게 강제 양도된 부분이 있다. 특히 포털 화면에만 소개됐다면, 예외 없이 딱 한 번의 클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힘을 갖게 되었다.


지난주의 내가 경험한 것처럼 누군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써낼 정도의 글재주만 있으면 결국 다윗과 골리앗은 계급장 떼면 똑같다. 중압감을 이겨내고 기록해 보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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