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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Aug 28. 2024

월 천만 원을 포기할 용기가 생겼다

내가 직장인이 체질인 줄은 또 몰랐네


최근 개인 사업자를 꿈꾸는 친구를 사귀었다. 온라인에서 가장 큰 쇼핑몰 플랫폼 대기업 중 한 곳에서 10년 넘게 다닌 실력 있는 언니다. 회사에서 마케팅과 홍보 관련 업무를 하다가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 번 받았는데, 서울 생활이 돌연 싫어져서 부모님 댁으로 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시골 내려가서 카페나 차려야지"를 입버릇처럼 하다가 결국 실천에 옮긴 것이다. 지금은 잠시 접어두었지만, 사업을 한 번 실제로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 사업 이야기를 건너서 들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몇 번 나누어 보니 사업 이야기를 할 때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빛이 강단 있고, 다정한 그 마음씨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서 뭐든 일을 해내겠다 싶은 사람이었다.


저돌적이고 실천력 강한 친구를 사귀어서인지 최근에는 나도 "사업을 해야 돈을 번다. 잘 되면 월 천만 원은 우습다더라."는 직장인들의 입버릇을 넘어 실제 임장까지 가고 말았다. 사유야 붙이기 나름인데 사무실을 차린다느니, 카페를 낸다느니, 공부방을 차린다 따위의 변명이었다. 글쓰기 짬바도 있으니 "인근에서 글쓰기 교습소를 차려야겠어"라며 혹시 수요가 있나 하고 크몽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 집 주변엔 선생님이 딱 한 분 계시는 것 같았다. 말로만 하던 저출산이 이거구나, 수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즉시 접었다. (수요가 너무 많아서 딱 시간 되는 게 이 분밖에 남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 


매일 퇴사하면 뭐 하지 고민하는 회사 선배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경력이 좋으니 아주 잘 될 것이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업을 해보라는 희망 가득한 메시지가 녹음해 놓은 듯 계속 들려왔다. (이들은 직장 생활만 20~30년 한 사람으로서 기자 외의 사회생활 경험은 전무하다는 점을 생각해 내곤 귓등으로 듣기로 했다.) 그 외에도 맥주집이 잘 된대! 하면 또 우르르, 뭐니 뭐니 해도 밥집이 많이 남지, 하면 또 우르르. 심지어 청년농을 꿈꾸며 무려 3년짜리 교육 신청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동숲이 아니었지.)


청년농을 꿈꾸는 나와 밭갈이를 담당할 강아지의 뒷모습이다.


그러다 내가 어디까지 갔느냐면 공공기관 입찰을 한다는 데까지 흘러들어 가 보았다.

이야, 여러 번만에 이건 포기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시청 카페 같은 건 어때? 아주 좋지." 입맛을 다시며 온비드에 카페 자리가 나온데 없는지 살펴본 게 발단이었다. (온비드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덧붙이자면, 공공기관 내에 카페나 식당, 사무실을 빌려주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데는 입찰을 보아 들어가는 것인데, 그 입찰할 수 있는 사이트가 온비드라는 곳이다. 정부에서 운영한다.) 안타깝게도 제주도와 같이 내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거나 혹은 최소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연간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거나 하는 등 짜릿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싸게 입찰금을 불러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업계획서 등 서류를 총 24장 내도록 하는 곳도 있었다. PPT를 만들어 정해진 날짜에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해야 하는 그야말로 갑을병정의 정이었다. (내가 하기로 된 것도 아닌데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니 내가 기자라고 나름 갑질(?) 좀 했던 가락이 어디 을도 아니고 정의 자리에 가겠는가. (웃기려고 하는 얘기다.) 심지어 그걸 다 써놓기까지 했는데, 접수하려니 마음이 켕겨 결국 마감일까지 제출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일단 사업 설명회를 참석해야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해서 보았다. "이런 시골에 누가 오겠어?" 하는 마음을 안고. 그래, 집요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내가 또 한 번에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설명회장에는 정도 되어 보이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처음엔 민원인이 몰린 줄 알았다. 설명회 시작도 전부터 온갖 나이대, 성별, 차림새의 쉰여 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에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졌다. 두런두런 업자들이 불평하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고, 서로를 노려보는 (노려본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팽팽한 신경전에 내 기가 쪽 빨렸다. 곧 담당 공무원이 내려와 참석자를 일일이 신분증 대조하고, 개인정보를 수기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게 먼저 진행돼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수기로 깜지를 쓰실 건 또 뭔지. 그러는 통에 신분 확인에만 꼬박 시간이 걸렸다.


당시엔 언제 끝날 지 몰라 나도 그 사람들과 함께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람들끼리 그 좁은 자리에서 저마다 이 프랜차이즈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이러면 안 남고, 저러면 안 남고 하는 얘기가 듣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진짜로 내가 정말 꾼들의 잔치에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태연한 척은 해보았다.) 거기까지도 괜찮았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귀동냥하던 내 귀에 얼핏, "사전 등록을 한 사람이 50명은 더 있다"는 그러니까 백 명이 이 사업장에 관심이 있는 거라는 얘기가 스쳤다. 이곳은 지옥이다. 3n 년 산 내 짬바가 경고음을 울렸다. 난 질려서 도망쳤다. 준비도 안 된 상태로 들어왔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했다.


그렇게 짧은 방황을 마치고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나름 회사와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용주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안정적인지. 그래, 내 삶에 무슨 사업이란 말인가. 티끌 모아 티끌 부자가 되리라.


다만, 한동안 놓아두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이래 봬도 나는 미국에서 원어민들과 일하다 온 인재다.) 한국어로만 글을 쓰고 말을 해서는 발전도 없고, 그저 그런 기자 중의 하나로 끝나게 될 거라는 위기감도 있었다. 특히 한 축제에 놀러 갔다가 영어 진행자가 하도 형편없는 외국어를 구사하시기에 글로벌 시대에 뻗어가는 K-POP을 외국인에게 알릴 자, 나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진행자 페이가 좋다고 한다. 영어까지 잘한다면 더욱! 나에게 딱 맞는 노다지 블루오션을 찾은 이상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참, 그 언니는 무얼 하는 줄 아는가? 내가 진작에 회사에 돌아갈 의향은 없으시냐고 여러 번 물어보았다. 이미 시도해 보았지만 잘 되지도 않는 것 같고 차라리 내 사업하는 게 편하겠다며 내가 좀아까 탈출구를 열고 나온, 그 자영업 지옥길에 뛰어들기로 했다. 아니, 이미 사업자를 새로 냈다고 한다. 빠르기도 하지. 그렇게 접어두었던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홍보를 한다며 집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하루종일 핸드폰에 노트북과 씨름을 한다. 하려는 사업과 관련한 사람들을 전국에 수배하고, 사업을 더 넓힐 궁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10년간 다녔던 회사 이야기를 할 때 느끼지 못했던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아, 왜 난 저런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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